“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 핀테크 열풍이 불면서 주로 회자되는 기업은 송금·결제 기업입니다. […] 글로벌 투자 비중을 보면 이미 2008년에 송금·결제 부문 투자를 마치고 2013년 기준으로 금융 소프트웨어(SW)나 데이터 분석 분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 핀테크 산업 발전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최소 3~4년 뒤처져 있다는 겁니다.”
김종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 핀테크 담론이 겉으로 보이는 송금·결제 분야에만 머문다고 꼬집었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1월22일 저녁 서울 종로구 올레스퀘어에 마련한 ‘핀테크 핵심 이슈와 국내외 시장 현황과 전망’ 세미나 자리였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정부와 언론이 주도하는 핀테크 열풍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해외에서 핀테크 산업이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시장 특성 때문이라며 “(한국에서는) 핀테크 기업이 금융시장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라고 평가했다.
핀테크 기업 성공 뒤엔 금융시장 특수성 있어
한국에서 핀테크 회사라고 널리 알려진 곳은 대부분 송금·결제 회사다. 다음카카오가 내놓은 ‘카카오페이’와 ‘뱅크월렛카카오’, 라인이 선보인 ‘라인페이’ 등이 그렇다. 영국 재무부는 핀테크 시장을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눴다. 송금·결제, 금융데이터 분석, 금융SW, 금융플랫폼 등이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국내 핀테크 회사가 송금·결제 분야에만 쏠리는 이유가 “기술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금과 결제 부문은 기존 IT기업이 가진 기술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쪽에 많은 기업이 몰립니다.”
송금·결제는 고객 접점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다음카카오와 라인은 자사 O2O(Online to Offline) 사업에 동맥으로 간편결제 서비스를 활용한다. 하지만 금융업 전체로 보면 송금·결제는 일부분일 뿐이다. 금융시장의 꽃은 자산관리다. 은행도 송금 수수료가 아니라 대출 등 금융상품에서 더 많은 돈을 번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중국 기업이 자산관리 분야에 가장 활발히 진출한다고 말했다. 알리바바와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대표 IT기업은 단순히 전자결제 회사를 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에서 허가를 받아 인터넷 전문은행 등 금융서비스도 시작했다. 알리바바가 내놓은 MMF상품 ‘위어바오’가 대표적이다. 위어바오는 출시 1년 만에 우리돈으로 100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다.
시장 크기로 보면 미국과 유럽쪽 핀테크 시장이 큰데 왜 유독 중국 IT기업만 자산관리 시장에서 돋보일까. 중국 금융시장 구조가 독특한 까닭이다. 김종현 연구위원의 설명을 더 자세히 들어보자.
알리바바 핀테크 성공 비결? 중국 금융시장 특수성 덕분
많은 나라와 달리 중국 금융시장은 정부가 통제한다. 한국과 비교해보자. 한국은 은행마다 금리가 다 다르다. 은행이 각자 상황이나 전략에 따라 이자를 다르게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은행끼리 돈을 주고받을 때 적용하는 기준금리만 결정한다. 기업이나 개인이 은행과 거래할 때 적용하는 이자율은 기준금리보다 조금 높게 책정된다. 이를 시장 금리 체제라고 부른다.
중국은 반대다. 중국은 금리를 정부가 정한다. 그래서 시중은행 금리가 모두 같다. 정기예금 금리가 3%를 약간 웃돈다. 정부가 그렇게 못박아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장금리가 없는 건 아니다. 기업과 기업, 기관투자자 사이에는 이른바 ‘협의예금’이라는 게 있다. 기업끼리 돈을 빌릴 때는 정부가 정한 금리에 묶이지 않는다. 협의예금은 시장에 따라 움직인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기업 사이에 자금을 거래할 때 주는 협의예금 이자는 1년에 5~6%다. 개인이 은행에 돈을 맡기고 받는 금리보다 2배 가까이 높다. 개인에게 싸게 돈을 빌려 기업에 이자를 2배로 붙여 빌려주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알리바바가 포착한 기회가 바로 이것이다.
정부가 시중금리와 협의예금 금리를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재정거래’를 할 수 있다. 재정거래란 같은 상품 가격이 다른 점을 이용해 위험부담 없이 상품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내는 투자 방식이다. 알리바바는 6%에 이르는 이자를 준다며 1억명이 넘는 고객에게 5800억위안(100조원)을 모았다. 알리바바 전자지갑 계정에 맡긴 돈을 간단히 위어바오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모은 돈은 중국 최대 민간 금융회사 텐홍그룹에 맡겨 수익을 거둔다. 알리바바가 1년 만에 세계 4위 규모 자산운용사로 거듭난 배경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수익구조가 나올 수 없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거의 모든 금융 선진국에는 이런 사업이 불가능하다. 알리바바가 핀테크 기업으로 발돋움한 일이 다른 나라에서 재현될 수 없는 이유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핀테크 기업도 그 나라 금융시장 특성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식 규제, 핀테크 기업 성장 막아
“한국 핀테크 시장도 글로벌 시장처럼 ICT기업 위주입니다. 통신 3사와 다음카카오, 삼성전자 등이 기존 서비스에 붙여서 하고 있죠. 하지만 혁신적인 서비스를 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미국 벤처스캐너라는 회사가 전세계 핀테크 회사를 조사했는데, 2013년 기준으로 국내에는 핀테크 회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핀테크 산업의 현실입니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한국에 내로라할 핀테크 기업이 없다고 꼬집었다. 규제가 핀테크 산업이 나아갈 길을 가로막은 탓이다.
“해외에서 가장 잘 되는 핀테크 사업 중 하나인 크라우드펀딩은 한국에서 못합니다. 법으로 유사수신행위를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많아요. 제한 조건이 한 법에만 걸친 게 아니라 전자금융거래법, 자본시장통합법, 여신금융업법, 전자금융 감독규정 등 사안에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규제에 다 막혀서 핀테크 기업이 사업하기 어려운 겁니다. 이상적으로 정부가 정말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여견을 만들려면 그런 법을 조목조목 다 따져 규제를 풀어줘야 합니다.”
해외 기업이 시장 꿰차기 전에 토대 다져야
김종현 연구위원은 강의 끄트머리에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국내) 핀테크 기업이 많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금융시장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라고 평가했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이) 경계해야 할 부분은 해외 핀테크 기업”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규제 때문에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한국 회사와 제휴해 간접적으로 사업을 벌이지만, 정부가 핀테크 시장을 키우려고 규제를 걷어내는 순간 이들이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이닥칠 수 있다는 우려다.
“해외 기업이 국내 송금·결제 시장에 진출하면 먼저 거래 접점을 확보할 겁니다. 일단 물꼬를 트는 거죠. 그래서 거래 비중을 늘려가면 신용카드 회사나 PG사, 은행 송금 부문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이이 회사는 거기에만 머물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 확보한 금융거래 정보를 통해 고객 신용평가를 합니다. 우리 기업보다 앞서 개발한 알고리즘이 있으니 경쟁이 안 됩니다. 그래서 예금 대출 자산관리 시장을 확보하면 국내 자산운용사, 증권, 은행 예금, 대출 사업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국내 핀테크 산업은 갈 길이 멉니다. 시장이 성숙되지 않았어요. 국내 핀테크 산업이 빨리 성장하지 않으면 이들 기업에 한국시장과 기업이 종속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니 정부도 빨리 규제 풀어주고, 여기 모인 분들도 창업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핀테크 산업 키우는 데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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