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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핀테크 발목 잡는 5대

박근혜 대통령이 핀테크 육성에 힘쓰라고 말한 뒤 정부 기관이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 1월27일 IT·금융 융합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핀테크 업계에서 문제라고 지적한 점을 거의 모두 손보겠다고 발표했다. 적용 시기까지 6개월에서 1년 뒤로 못박았다.

핀테크 업계는 금융위 발표를 ‘종합선물세트’라 부르며 반겼다. 그동안 핀테크 산업에 목줄을 죄던 규제기관이 앞장 서 전방위적으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61쪽짜리 보고서에는 큰 틀에서 방향만 제시돼 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를 어떻게 손볼 계획인지는 알 수 없다. 금융위를 일선에 내세운 정부가 진짜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려면 무엇부터 손봐야 할까. 한국핀테크포럼의 도움을 받아 핀테크 업계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법이나 규제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IT전문 법무법인 테크앤로에서 법률 자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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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2P 대출 막는 대부업법

요즘 가장 관심이 쏠리는 핀테크 분야가 P2P 대출이다. 대출은 은행 사업모델의 뿌리다. 은행은 예금자에게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린 뒤 대출 고객에게 더 비싼 이자로 빌려줘 수익을 남긴다. 예금 이자와 대출 이자 사이 차액을 ‘예대마진’이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은행 사업 모델은 예대마진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P2P 대출은 은행이 하던 일을 핀테크 회사가 하겠다고 나선 사업모델이다. 인터넷 플랫폼을 꾸리고 거기서 투자금을 모아 돈이 필요한 이에게 대출해주겠다는 발상이다. 은행과 다른 점은 핀테크 회사는 그저 거들 뿐이라는 점이다. P2P라는 이름처럼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과 빌리려는 사람이 서로 거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만 한다. 은행처럼 고도의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아니고 오프라인 지점을 열지 않아도 된다. 운영 비용이 적게 드니 대출 고객에게는 은행보다 간편하게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려주면서도 돈을 맡긴 투자자(예금 고객)에겐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이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은행업을 꽃피운 뒤로 오랫동안 검증 받은 사업모델인 만큼 수익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P2P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 핀테크 회사 렌딩클럽은 기업가치가 9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말 뉴욕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소상공인 대상 P2P 대출 전문 핀테크 회사 온덱도 지난해 말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기업가치가 1조5천억원에 이른다는 평가를 받으며 2억달러를 조달했다.

P2P 대출 핀테크 회사 렌딩클럽

▲P2P 대출 핀테크 회사 렌딩클럽

한국에서 렌딩클럽 같은 사업을 벌이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과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유사수신행위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사수신행위란 등록이나 신고를 안 하고 원금이 넘는 돈을 돌려주기로 약속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금을 모으는 일을 가리킨다. 금융업자나 대부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한테 투자금을 모을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등록하지 않은 자가 수신업을 할 수 없도록 못박은 유사수신업법

▲등록하지 않은 자가 수신업을 할 수 없도록 못박은 유사수신업법

그럼 등록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듯하다. 금융업자로 등록하려면 엄청난 자본금이 필요하다. 은행은 2천억원, 신용카드회사는 400억원이다. 대부업자로 등록하는 쪽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다. 대부업자가 되려면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면 된다. 하지만 IT기업인 핀테크 회사가 대부업자로 등록하면 기존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그래서 국내 몇 안 되는 P2P 대출회사는 앞단에서 고객을 모으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뒷단에서 대출 사업을 운영하는 대부업체를 따로 세우는 꼼수를 쓴다.

대부업자로 등록하면 회사 이름에 ‘대부’라는 글자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점도 핀테크 업체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P2P 대출업체 관계자는 “이름에 ‘대부’나 ‘대부중개’라는 글자를 쓰면 기존 대부업체와 똑같다는 인식을 줘 P2P 대출 본연의 이미지를 살릴 수 없다”라고 항변했다.

대부업자로 등록하면 이름에 "대부"를 써야한다고 규정한 대부업법

▲대부업자로 등록하면 이름에 ‘대부’를 써야 한다고 규정한 대부업법

대부업자가 돼도 투자자에게 채권을 넘겨받아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도 현행법의 한계다. 대부업법 제9조의 4항에 따르면, 대부업자는 미등록 대부업자에게서 채권을 넘겨받아 대신 돈을 거둘 수 없다. 문제는 P2P 대출회사에 투자금을 빌려준 고객은 대부업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내 P2P 대출회사는 투자자를 대신해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없다. 투자자 보호 대책이 없는 셈이다.

P2P 대출회사나 크라우드펀딩 회사가 투자자 대신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도록 가로막는 대부업법

▲P2P 대출회사나 크라우드펀딩 회사가 투자자 대신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도록 가로막는 대부업법

미국은 지난 2010년 5월 금융개혁안(HR4173) 속에서 P2P 대출업을 새로운 업종으로 규정하고 연방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이 감독하도록 했다. 미국이 내놓은 해법은 단순하다. P2P 대출에 투자한 돈을 유가증권으로 봤다. 그래서 투자자와 P2P 대출회사가 유가증권을 주고받도록 했다. P2P 대출회사는 유가증권을 사들였으니 대출을 받아간 고객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권리가 생긴다.

2. 크라우드펀딩 발목 잡는 크라우드펀딩법

킥스타터, 인디고고 같이 해외에서는 이미 성공적인 사업 모델로 평가받는 크라우드펀딩 역시 국내에선 나오기 힘들다. 당장은 P2P 대출처럼 우회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상황이지만 투자자를 보호할 길이 없다.

국회에 계류 중인 14개 민생 법안 가운데 크라우드펀딩법이 있지만, 이 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크라우드펀딩 업체에 족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보호에만 무게가 너무 쏠린 탓이다.

크라우드펀딩법은 투자자가 같은 회사에 1년 동안 500만원 넘게 투자할 수 없도록 못박았다. 스타트업에 초기자본을 댄다는 크라우드펀딩의 취지에 비춰보면 연간 500만원이라는 한도는 터무니 없이 낮다고 업계 관계자는 꼬집었다.

또 일반투자자가 1년 동안 투자한 돈을 돌려받을 수 없게 한 점(환매 금지)도 크라우드펀딩법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환매를 허용하되 1년 이상 투자를 유지할 경우 앤젤투자자처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를 주선하는 플랫폼 사업자인 크라우드펀딩 회사가 투자자에게 직접 정보를 제공할 수 없도록 막은 점(자문업 전면 금지)도 발목을 잡는다.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특성상 자금을 유치하는 회사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사용자에게 공유하는 일이 불가피한데, 이런 일을 자문업으로 규정해 막아버리면 사업 자체가 운영되기 어려워진다.

3. 정보 유출시 과도하게 처벌하는 개인정보보호법

빅데이터는 핀테크 산업이 싹틀 토양이다. 하지만 한국은 잇따른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고 후폭풍으로 정보 보호에만 집중한 나머지 빅데이터 산업이 꽃피기 힘들 만큼 법망을 좁혀뒀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유출한 경우 5년 이하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해외는 개인정보를 고의로 또는 경제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빼돌린 경우에만 처벌한다. 국내 규제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한 편이다.

지난해 미국 대형유통업체 타겟이 해킹당해 4천만건에 달하는 고객 결제정보를 유출당했다. 연방수사국(FBI)이 해킹 배후를 밝히려고 수사에 참여했지만 타겟이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 배상금으로 거액을 내놔야 했다. 한국에서는 해킹 때문에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보호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정보보호에만 방점을 찍어두면 업체가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데이터를 공개하기 어렵다. API를 열어뒀다 자칫 사고가 나면 피해를 몽땅 뒤집어 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4. 누가 잘못 했든 금융회사 탓이라는 전자금융거래법

전자금융 과정에 사고가 나면 일단 금융회사와 전자금융회사에 책임을 묻는 전자금융거래법도 늘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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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금융거래법 제9조 1항에 따라 법원은 전자금융 사고 책임이 금융회사나 전자금융회사에 있다고 판결한다. 그 뒤에 “다만”이라며 면책 사유를 덧붙여 책임을 면제해준다. ‘일단 네 책임이지만, 이러이러하니 봐줄게’라는 식이다. 일차적으로 모든 금융거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금융회사에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는 핀테크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힘들다. 사고가 나면 이유야 어찌됐든 다 자기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사고가 안 나는 쪽에 치우친다. 한국 전자금융이 불편하고 복잡한 근본적인 까닭이다.

금융위는 핀테크 지원 방안에 이 점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떻게 고쳐갈지는 알 수 없다.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을 고치려면 보통 6개월에서 1년 넘게 걸린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특별법을 만들거나 시행령을 고치는 식으로 빨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아우성이다.

5. 사전 규제에서 사후 관리로 대전환, 가능할까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사전 규제에 목 매던 금융위가 사후 관리로 방향을 틀었다는 점이다. 보안성 심의 제도를 없애는 등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규제기관 문부터 두드려야 했던 기존 방식을 180도 바꿔, 큰틀에서 사업은 알아서 하되 문제가 생기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식으로 핀테크 시장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유연하게 사업을 시작하고 시장에서 평가받을 길이 열렸다며 환영하는 이도 있지만, 규제기관이 단박에 허가를 내주던 방식이 모든 금융회사에서 따로 자체 보안성 심의를 치러야 해 도리어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보안성 심의 제도는 오는 6월께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다. 남은 네 달은 유예기간이다. 금융위는 제도 폐지 발표 이후 보안성 심의 접수를 더이상 받지 않으면서 ‘시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칼자루를 넘겨받은 시장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금융회사와 바로 손잡고 가볍게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지, 아니면 금융회사가 금융위보다 더 높은 벽을 쌓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규제기관의 인식 변화다. 사전 규제에서 사후 규제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뒤엎겠다고 발표했지만, 이게 가능하겠냐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독일과 일본 같이 대륙법계인 한국 법체계의 구조적인 속성 때문이다. 대륙법계는 법 제도가 열거형이다. 일일이 조목조목 법이 규정한다.

앞서 얘기한 대부업자로 등록했다고 치자. 대부업법에는 대부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하나 적혀 있다. ’1. 채권이냐 어음을 양도받고 돈을 빌려줄 수 있다. 2. 채권을 추심할 수 있다’라는 식이다. 법이 할 수 있다고 한 일이 아니면 못 한다. 이게 대륙법 체계다.

영국과 미국 법체계는 영미법계다. 영미법은 전향적이다. ‘일단 다 해도 되는데 이런저런 일은 하지 말라’고 하는 식이다. 흔히 포지티브, 네거티브 규제를 이야기할 때 지적하는 차이점은 법체계의 차이점에서 비롯한다. 법은 한 나라의 뼈대다. 국가기관뿐 아니라 그 나라 구성원 모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규제기관이 미국보다 답답하리만큼 규제를 따지고 드는 건, 규제를 일일이 헤아리도록 법이 규정했기 때문이다. 법체계의 뿌리가 이럴진대 핀테크에만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언뜻 보기에도 쉽지 않아보인다.

이유 없는 규제는 없다. 대기업 같은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가질 수 있게 하면 자기 돈 조금만 갖고도 은행에 들어온 많은 돈을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금산분리 원칙이 나왔다. 또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낯설었던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난 전자상거래에서 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에 전자금융거래법이 마련됐다. 하지만 시대상을 반영해 규제가 나온 것처럼 거꾸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살피고 규제 체계를 손볼 필요도 있다.

백짓장 한국 핀테크, 밑그림부터 잘 그려야

국내 핀테크 시장은 이제 막 태어나는 중이다. 생태계라고 부를 만큼 구성원이 풍성한 것도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핀테크’를 외치는 요즘이지만, 진짜 핀테크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핀테크는 IT기술(technology)이 보수적인 금융업계(financial)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덩치 큰 금융회사가 사회 전반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뒤처지던 문제를 기술회사가 나서서 해결한다는 뜻이다. 해외에서 성공적인 핀테크 사업 모델은 대부분 기술기업이 주도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핀테크 논의가 독특하게 흐른다. 진짜 핀테크와 거리가 먼 ‘인터넷 전문은행’이 핀테크 산업의 대표격으로 취급받는다. 정부가 주로 소통하는 쪽도 혁신을 주도할 핀테크 스타트업이 아니라 기존 금융회사다. 금융위가 지난 2월3일 마련한 범금융 대토론회도 금융회사 중심으로 진행됐다.

물론 핀테크 서비스 뒤에는 금융회사가 있어야 한다. 국내 금융 인프라, 훌륭하다. 계좌이체가 실시간으로 되는 나라는 흔치 않다. 미국도 며칠씩 걸린다. 잘 만든 금융 인프라는 핀테크 시장이 꽃피울 좋은 토양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핀테크 시장을 금융회사에만 맡겨두면 안 된다. 핀테크는 인터넷·모바일 은행이 아니다. 은행과 전혀 다른, 은행이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게 핀테크다. 은행과 핀테크 스타트업의 성공적 협업 사례로 꼽히는 영국 바클레이즈 금융그룹을 보자.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는 쪽은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은행은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하면 된다. 국내에 핀테크 시장을 꾸리겠다고 나선 정부는 어느 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한번쯤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