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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로 연매출 30억 올리는여대생

상추로 연매출 30억원 올리는 여대생 김가영씨]

스무살 때 農活 갔다 농사에 꽂혀… 재배는 너무 어려워 流通하기로
겨울엔 1만2000원, 여름엔 8만원… 널뛰기하는 상추값 균일가로 팔아
"취업난에 20대가 '잉여'인 요즘 농촌은 뭔가 할 수 있는 여백 있어"

2006년 이른 봄 밤 전북 남원시 아영면 외딴 마을. 수상한 여자가 어둠을 밟고 남의 밭 귀퉁이(10평·33㎡)에 살금살금 상추 씨를 뿌렸다. 얼마 전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농촌을 보고 싶다"며 아는 사람 집에 묵고 있었다. 여행 온 척했지만 속셈이 따로 있었다. "노는 땅을 찾아서 몰래 농사를 지어보려 했어요."

이 학생이 그 뒤 상추 전문 유통회사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을 창업해 연매출 30억원을 올리는 김가영(28)씨다. 왜 하필 남원이었을까. "아버지 고향이거든요. 혹시 잘못되면 한 대라도 덜 맞으려고…."

왜 농촌에 꽂혔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서울 사대문 안에서 나왔다. 대학도 돈의문 코앞 이화여대로 갔다. 숭의여중 땐 게임에 빠졌고, 선린인터넷고 땐 동급생 8명과 홈페이지 만들어주는 벤처회사를 했다.

대학 1학년 때 천안으로 농활 갔다 '어, 나랑 맞네?' 했다. "포도 딸 때 다른 애들은 뒤처지고 저만 확연히 앞으로 진격했어요." 할머니들이 흡족해했다. "기운 좋구먼."

상추밭에 쪼그리고 앉은 김가영(28)씨. 그는 연매출 30억원인 상추와 연매출 7억원인 고춧가루 외에 짬짬이 방울토마토도 판다. 장사 틈틈이 동네 할머니들과 고스톱 치는 게 낙이라고 했다. /생생유통 제공
농사 배우고 싶은데 땅이 없었다. 민법 책에서 '남의 땅에 농사짓다 들키면 땅 빌린 값만 물어내고 농산물은 가져도 된다'는 판례를 봤다. 그거 믿고 그 이듬해 도둑 농사를 결행했다. 상추를 택한 이유가 뭘까. "농활 때 천안 할머니들이 '상추가 제일 쉽다'고 했어요. 씨 뿌리면 난다고."

상추가 뭐길래

그 말 듣고 정말 뿌리면 되는 줄 알았다. 도둑 농사 첫날 밤, 흙 위에 상추씨를 투척했다. 이튿날부터 주위를 배회하며 싹이 돋나 안 돋나 봤다. "안 나더군요."

몸이 달아 할머니들한테 슬쩍 물었다. 할머니들이 혀를 찼다. "뿌린다고 나겄어? 손구락 두마디쯤 땅 파서 심고 물을 줘야 혀. 시골에선 다섯 살짜리도 아는디."

한밤중에 상추씨를 다시 심었다. 싹이 난 건 좋은데 범행이 들통났다. 밭 주인 할머니가 화내다가 웃었다. "내가 하는 거 잘 봐." 할머니를 사부로 모시고 그해 여름 그 밭에서 상추를 세 번 더 땄다. 그때 알았다. "농사짓는 기술로는 제가 절대 그분들 못 따라가요." 할머니들 상추는 일렬로 났다. 김씨 상추는 정글처럼 우거졌다. 그래도 농사는 좋았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유통(流通)이 답이었다.

이게 왜 돈이 되나

상추 값은 1년 내내 시소를 탄다. 4㎏ 한 상자가 겨울엔 1만2000원, 8월 땡볕엔 6만~8만원 한다. 사철 상추를 내는 고깃집은 여름마다 죽을 맛이다. 이 대목에 승부를 걸었다. 공판장 상추 값이 어디로 튀건 1년 단위로 계약해 사철 같은 값에 대기로 했다(1만1500~1만3500원). 농사짓는 사람은 여름 한철 싸게 팔고 봄·가을·겨울에 제값 받을 수 있다. 고깃집 하는 사람은 봄·가을·겨울에 몇만원 더 내고 여름 스트레스를 면할 수 있다. 처음엔 고전(苦戰)했다. 여대생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상추 팔러 홍대 가다

고추밭의 김가영씨. 몸뻬에 장화 차림이다. /생생유통 제공
남원 도둑 농사가 대학 2학년 때다. 이듬해 3월부터 매달 두세 차례 남원에 갔다. 2㎏들이 상추 상자를 10개씩 사들고 서울 강남역과 홍대 앞을 돌았다. 또래가 스키니진 입고 학원 다닐 때, 몸뻬 입고 상추 들고 아무 고깃집이나 쓱 들어갔다.

김씨: "저기요."

사장: "안 사요."

오후까지 한 상자도 못 팔고 상추만 시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명함 꽂은 상자를 식당 앞에 부려놓고 달아났다. 험한 전화가 왔다. "안 산다는데 왜 놔두고 가!" 8개월 만에야 첫 고객이 생겼다.

또 다른 복병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서울 고객과 시골 농부 둘 다 연간 계약을 지켜야 한다. 한쪽이라도 관두면 중간에 낀 김씨가 뒤집어쓴다. 약속을 못 지키면 끝이다. 지키려면 자기 돈으로 메꿔야 한다. "근데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휴학계 내고 남들 홈페이지를 만들어줬다. 야광봉 떼다가 콘서트장에 좌판도 폈다. 이렇게 월 100만~150만원 벌어 상추 장사에 부었다. 상추 팔아 월 70만~80만원 벌기까지 2년 걸렸다. 거기까지가 힘들었다. 신뢰가 쌓인 것이다. 이후론 쑥쑥 컸다. 지금 이 회사는 농부 59명이 상추를 대고, 식당 61곳이 그걸 받는다. 내친김에 3년 전엔 고춧가루 유통회사 '생생유통'도 세웠다. 작년 매출이 7억원이다.

잉여의 힘

"경제발전, 민주화…. 앞선 세대는 다 그들만의 사회변화를 만들어냈는데, 저희는 그럴 기회가 없어요." 취업난도 심해서 자리 못 잡는 사람이 많다. 20대는 스스로를 '잉여'라고 자조(自嘲)한다. "근데 농촌은 달라요. 뭔가 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요." 그 점이 흥분됐다.

김씨는 대학 '10학년'이다. "이제 정말 한 학기만 더 다니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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