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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내 손 안의 수력 발전기...흐르는 물로 휴대폰⋅램프 충전 '거뜬'

2006년 부산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박혜린(당시 22살)씨는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인도 남부의 산골마을 코다이커널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인생을 뒤바꿀 경험을 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마을 곳곳을 찍고 있는데, 9살 짜리 꼬마가 ‘난생 처음 본 물건’을 신기해 하며 박씨에게 다가왔다. 꼬마는 박씨의 카메라를 받아들고 요리하고 있는 엄마와 길거리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을 찍으며 행복해했다. 박씨는 아이에게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주고싶었지만,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 

당시의 일이 안타까웠던 박씨는 미니 수력 전기발전기인 ‘이스트림’(Estream)을 개발해 2017년 2월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스트림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일반 텀블러 사이즈다. 프로펠러와 모터, 배터리 세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프로펠러를 펴 흐르는 물 속에 4시간 반 정도 담가두면 스마트폰을 2~3번 완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

스타트업 이노마드(Enomad)의 소형 수력 발전기  ‘이스트림’(Estream)./이노마드 제공
 스타트업 이노마드(Enomad)의 소형 수력 발전기 ‘이스트림’(Estream)./이노마드 제공

지난 9일 서울의 청계천 근처 카페에서 박혜린(31) 이노마드(Enomad) 대표를 만났다. 굵은 웨이브의 헝클어진 단발 머리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박 대표는 ‘Bring your own power plant’(자가 발전원을 가지고 다니자)라고 쓰인 검정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박 대표는 “회사 이름은 전기 플러그가 없는 곳에 있더라도 어디에서나 에너지(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노마드’(Nomad⋅유목민)의 삶을 가능케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가방 속에서 길이 24cm, 800g의 소형 수력발전기를 꺼내 보였다.

박 대표는 “에너지 접근성 측면에서 누구나 평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탄생한 제품"이라며 “아웃도어 캠핑 시장이 크게 성장한 미국의 자연 캠핑장 수십곳을 돌아다니며 피드백을 받은 결과 완성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가 가방 속에서 텀블러 크기의 ‘이스트림’을 꺼내 램프와 프로펠러로 분리한 뒤 양손에 들고 있다./전효진 기자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가 가방 속에서 텀블러 크기의 ‘이스트림’을 꺼내 램프와 프로펠러로 분리한 뒤 양손에 들고 있다./전효진 기자


◆ 국내 최초로 수력을 활용한 미니 발전기를 개발한 韓 스타트업

박씨는 국내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캐나다 빅토리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캐나다 유학 시절 박씨는 교내 창업 동아리의 활발한 토론 문화를 경험하며 사업을 준비했다. 동아리에서는 사업 아이템의 수익성을 고민하기보다, 제품이 세상을 바꿀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이 오갔다. 박씨는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와 전남 진도 울돌목의 조류발전 플랜트 개발 연구원으로 4년간 일했지만, 캐나다 유학시절부터 준비했던 창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대규모 조류 플랜트 사업을 진행하면서 배운 점도 많았지만, 여전히 전력 설비가 깔리지 않는 곳에서는 전기 사용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별한 인프라 없이도 누구나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로요.”

박 대표는 미니 수력 발전기를 사업 아이템으로 2014년 5월 ‘이노마드’(Enomad)를 설립했다. 하지만 사업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에너지 발전은 ‘발전이 더딘 재미없는 분야'로 여겨졌고, 수력발전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례가 드물어 투자자들로부터 “쓸데 없는 일을 한다”는 핀잔도 들었다.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청계천변에서 소형 수력 발전기인 ‘이스트림'을 시험해보고 있다./전효진 기자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청계천변에서 소형 수력 발전기인 ‘이스트림'을 시험해보고 있다./전효진 기자

하지만 박 대표는 좌절하지 않았다. 일단 서울시에 허가를 받아 서울 종로구의 청계천에 스마트폰 무료 충전 부스를 설치하고 3개월 동안 시민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시민들의 반응을 보다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은 시간당 6개 정도의 스마트폰을 재충전할 수 있는 미니 수력발전기를 매우 신기해했다. 밤에는 수력발전기를 램프로 활용하면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했다. 아이를 데려온 엄마는 수력발전기를 보며 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박 대표는 “단순히 전기를 생산하고 충전하는 것 외에도 책을 읽고, 교육하는 등 다양한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미니 수력발전기를 통해서 기존에 없었던 문화와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좋았고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이노마드는 청계천에 수력 발전을 이용한 간이 휴대폰 충전대를 설치했다./이노마드 제공
 지난 2014년 이노마드는 청계천에 수력 발전을 이용한 간이 휴대폰 충전대를 설치했다./이노마드 제공

◆ 아웃도어 캠핑 시장부터 교육 분야까지... “무한한 가능성 공략”

박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두번째 필드테스트를 했다. 전기 충전이 쉽지 않은 미국 오지의 캠핑장 60여곳을 찾아다니면서 제품 사용 범위를 넓힐 기회를 엿봤다. 

스포츠레저로 카약(인력으로 움직이는 소형 배)을 즐기는 사람들로부터는 배의 뒤편에 달아 전기를 만들어 써보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야외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바람에 쉽게 움직이는 프로펠러를 갈아끼워 수력뿐 아니라 풍력 발전을 해도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낚시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물 속에 숨겨진 전기를 낚는 것 같아서 재밌다"는 의견을 얻어 교육용 등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미국 사람들은 캠핑이 전 세대가 다음 세대로 문화를 전승해 주거나 교육하는 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저도 이 제품을 통해서 단순히 전기 아껴써야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새로운 문화를 전승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캠핑용 뿐 아니라 교육용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소형 수력발전기인 이스트림이 물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모습./전효진 기자
 소형 수력발전기인 이스트림이 물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모습./전효진 기자


이노마드는 영국의 한 국립박물관과 일본의 테마파크로부터 과학 교육 콘텐츠를 연계한 프로젝트를 제안받아 논의 중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만든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할 수 있는건 어찌보면 전세대가 만들어준 혜택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 덕에 우리가 누린 만큼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요. 여전히 불확실하고 막막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힘을 내곤 합니다.”

이노마드의 수력발전기 ‘이스트림’에 내장된 배터리 용량은 6400mAh(암페어아워)로 100% 완충시 스마트폰 2~3번을 충전할 수 있다. 예상 가격은 발전기 한 대당 180달러다.



 물 속에서 수력 발전을 한 후 반투명 덮개를 끼워 배터리 부분에 있는 LED 조명을 켜면 근사한 조명이 된다./이노마드 제공
 물 속에서 수력 발전을 한 후 반투명 덮개를 끼워 배터리 부분에 있는 LED 조명을 켜면 근사한 조명이 된다./이노마드 제공

















출처 : 조선비즈닷컴 전효진 기자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3/20160913019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