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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차기 화성탐사 로봇 임무는 ‘절벽 타기’

억겁(億劫)의 세월이 빚어낸 지층(地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역사의 나이테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흙과 돌들이 차곡차곡 쌓인 덕분에, 이를 보기 위해서는 지하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지층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절벽이다. 모든 절벽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절벽은 퇴적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를 잘 분석하면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외계 행성의 지층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절벽을 기어오르는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 NASA


문제는 깎아지른 절벽을 탐사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탐사해야 할 절벽이 지구가 아닌 화성과 같은 외계 행성에 위치해 있다면, 그 어려움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이 최근 절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6번째 화성 탐사용 로버(rover)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 로봇의 이름은 ‘리머(LEMUR, Limbed Excursion Mechanical Utility Robots)’다. (관련 기사 링크)


원래는 우주선 외벽 수리용으로 개발된 로봇


리머는 NASA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5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로봇이다. 원래는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 또는 우주선 등의 외벽에 문제가 생겼을 시 수리를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의 외벽이 파손됐을 시, 현재로서는 승무원이 우주공간으로 나가서 고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무중력 공간에서 두터운 우주복을 입고 작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리머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로봇이다. 4개로 이루어진 로봇의 손바닥에 흡착판을 부착한 후, 외벽에 붙어서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손상된 부분을 고치도록 만들어졌다.


리머는 우주선 외벽 수리 용도로 개발된 로봇이다 ⓒ NASA


로봇이 미끄러운 외벽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마이크로스핀(microspine)’ 시스템 덕분이다. 미세척추라는 의미의 마이크로스핀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여러 개의 작은 바늘 같은 돌기들이 벽면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꽉 잡아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가리킨다.


리머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 NASA 연구진은 바퀴벌레가 가파른 경사도 능숙하게 오르는 이유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마이크로스핀 구조를 갖추게 되면 아무리 미끄러운 벽면이라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리머 개발을 주도한 NASA 산하의 항공추진력연구소(JPL) 관계자는 “리머의 팔에 부착된 흡착판에는 이 같은 마이크로스핀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라고 소개하며 “여러 번 탈부착을 해도 흡착률은 떨어지지 않아서 곡면은 물론 평면에도 붙을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NASA가 개발한 마이크로스핀 시스템은 유사한 로봇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카네기멜론대가 개발한 ‘T-렉스(RHex)’를 꼽을 수 있다. 팔이 6개인 이 로봇은 바퀴벌레와 유사한 움직임으로 언덕이나 절벽 등을 오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현장 테스트에서 절벽 등반에 성공


리머는 우주선 외벽의 수리용 로봇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개발 과정 중간에 행성 탐사 용도로도 그 가능성을 타진 받게 되었다. 특히 화성 탐사에서 아직 미지의 분야로 남아있는 절벽을 탐사하는 로봇으로 NASA의 낙점을 받은 것.


절벽 탐사용 리머의 모양은 기존에 제작된 우주선 외벽 수리용 리머와 비교해 볼 때 크게 다르지 않다. 4개의 팔에는 각각 4개의 손가락이 형성되어 있고, 손가락 마디에는 수백 개의 미세한 미세척추들로 이루어진 흡착판이 부착되어 있다.


JPL의 관계자는 “미세척추들로 이루어진 흡착판이 절벽을 움켜쥔 채 기어오를 수 있다”라고 설명하며 “특히 리머에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어서 스스로 적합한 경로를 포착하여 기어오를 수 있고, 내장된 센서와 카메라를 활용하여 지층의 역사와 토양 성분을 분석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JPL 연구진은 이 같은 자신들의 주장이 맞는지를 스스로 검증하기 위해 최근 바위산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의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 현장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리머는 여우원숭이라는 의미처럼 절벽을 성공적으로 오르면서 그동안 이 로봇의 성능을 의심했던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리머가 절벽을 기어 오를 수 있는 이유는 팔에 장착된 마이크로스핀 시스템 때문이다 ⓒ NASA


특히 리머는 테스트 과정 중에 과거 바닷속에 살았던 해조류 화석을 절벽에서 발견하는 성과까지 거뒀다. 연구진은 발견된 화석을 고생물학 전문가에게 의뢰했는데, 5억 년 전 데스밸리에 살았던 해조류의 흔적이라는 분석 결과를 통보받았다.


사람이 판단하는 원격 조정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스템을 탑재한 이유에 대해 JPL 관계자는 “지구에 있는 절벽이라면 원격 조정이 더 효율적이지만, 다른 행성에 있는 절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라고 언급하며 “멀리 떨어진 지구에서 원격으로 조종하기에는 절벽의 지형이 너무 복잡하므로 인공지능 시스템 도입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JPL 관계자가 밝힌 것처럼, 리머와 같은 절벽을 기어오르는 로봇을 다른 행성에 보내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NASA의 행성 탐사 계획 중 하나다.


행성 탐사에 있어 한 때 물줄기가 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협곡은 과학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탐사 지점이다. 화성의 경우 지금까지 주행 로봇이 평지를 대상으로 탐사 임무를 수행했지만, 평지 탐사가 완료되면 차기 탐사지역은 절벽이 된다는 것이 NASA 측의 시각이다.




출처 : https://www.sciencetimes.co.kr/?p=195045&cat=36&post_type=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