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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단말기 자급제, 통신문제 대안 될까

시장이 보조금 대란으로 들썩일 때마다 정치권은 여러가지 관련 법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시행된 사례다. 보조금 분리공시, 통신 원가 공개 등도 여전히 도마 위에 올라 있지만 최근에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이 단통법에 이어 이 단말기 완전 자급제를 법으로 만들기 위해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병헌 의원실은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모아 법안을 가다듬고 곧 발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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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가 휴대폰 못 팔게 하는 법안

그간 보조금 대란이 터질 때마다 통신사, 판매점과 관계된 이들은 “차라리 통신사가 단말기를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털어놓곤 했다. 진짜 판매를 하지 말라는 것보다는 보조금에 얽힌 논란과 곧이어 얼어붙는 시장 분위기에 대한 피로를 설명하는 역설적인 말이었을 게다. 그게 실제 법안으로 이뤄지는 것이 단말기 완전 자급제다. 법안에는 여러 내용이 담겨 있지만 핵심은 이 한 줄이다.

이동통신단말기 제조사, 이동통신사, 이통대리점은 이통단말기를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이동통신판매점에서만 이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의 핵심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단말기를 판매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통신요금 인하와 보조금 대란이 일어날 때마다 통신사가 휴대폰을 직접 유통하기 때문에 출고가와 보조금을 둔 시장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일어났던 바 있다. 결국 법으로 그 뿌리를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이동통신사가 단말기를 함께 유통하는 현재 판매 방식이 보조금을 쏟아붓는 마케팅 과열의 주범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통신사가 단말기를 못 팔면 불법적인, 혹은 과다한 보조금을 주지 못하고 그 비용이 요금 인하와 서비스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통신사가 제조사로부터 단말기를 도매로 구입해서 소비자들에게 소매로 팔면서 이른바 ‘출고가’가 높아진다는 지적도 완전 자급제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통신사가 단말기를 독점으로 팔다보니 제조사로부터 공급은 싸게 받고, 출고가를 올린 뒤, 보조금을 많이 주는 것처럼 꾸민다는 것이다. 이 법에는 통신사가 단말기를 팔지 못하게 되면 단말기는 거품 빠진 제값을 찾게 된다는 기대도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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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단말기 자급제가 시행되면 단통법은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동통신사가 단말기를 유통할 수가 없으니 단말기 보조금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는 마케팅이 사라진다. 27만원이다, 30만원이다 논란이 많은 단말기 보조금도 사라진다. 잘만 자리잡는다면 통신사가 비용을 들여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요금을 내리는 것만 남게 된다.

결국 이 법안 역시 통신사가 보조금으로 쓰는 돈을 요금 인하분으로 쓰도록 유인하는 정책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말기 자급제가 과연 법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왔다. 하지만 실제 법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분위기다.

PC사고 인터넷 가입하는 것처럼

잘 정착된다면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 급제 시행 이후를 아주 단순하게 풀어보자. 우리가 인터넷을 쓰기 위해 통신사에서 PC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용산 전자상가나 삼성 디지털프라자, 하이마트에서 PC를 사고, KT나 티브로드 같은 인터넷 회선을 판매하는 회선 업체에 서비스를 가입하는 시스템을 모바일로 옮기는 셈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PC를 따로 구입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따로 사는 데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 이게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목돈 부담이다. 자급제가 시행되고 통신사들이 요금을 내리면 기존에 비해 전체 개인의 통신 비용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100만원에 이르는 단말기 값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직접 구입해야 한다. 개인이 단번에 현금으로 부담하거나 개인이 신용카드를 써서 구입해야 한다. 단숨에 목돈이 들어가는 것은 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단통법 역시 일부 가입자들에게만 돌아가는 보조금을 두루 나누어 주도록 하는 법안이었지만 보조금 대란이 없어지면서 ‘모두가 비싸게 사도록 하는 법’이라는 불만을 샀던 바 있다. 자급제를 통해 전체 이용 비용이 줄어들더라도 단번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단말기를 너무 자주 바꾸는 과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



기대만큼 큰 우려들

전병헌 의원은 자급제 법안을 2월 중에 상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걱정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건물마다 하나씩 있는 이동통신 판매점들이다.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모든 판매점은 USIM만 판매해야 한다. 혹은 통신 서비스 판매를 접고 단말기 판매점으로 업종을 바꾸어야 한다. 지난해 영업정지와 단통법으로 지쳐 있는 판매점들로서는 넘어야 하는 또 하나의 큰 산이다.

또한 의약 분업처럼 모든 휴대폰 가입점과 단말기 판매점들이 형식상으로 떨어져 있을 뿐 한 건물 안에 붙어서 운영될 수 있다. 대형 양판점처럼 단말기를 저렴하게 수급하는 데 유리한 대형 자본에게 유리할 수 있다. 가입자 입장에서도 두 곳을 들러야 새 휴대폰을 살 수 있어 구매 과정이 번거롭고 어려울 수 있다.

단말기 제조사가 직접 단말기를 판매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최근 IT 기기를 비롯한 소비재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판매 형태는 애플스토어나 이케아같은 체험형 매장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구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언제고 매장에 들려 제품을 자주 만져보게 하는 형태의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이들 제조사들이 직접 제품을 팔지 못하게 막는다면 소비자나 제조사 모두 제품 구매 과정에서 큰 경험을 잃는 셈이다.

자급제는 통신 시장 안정을 위해 시급한 법이긴 하지만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다. 수십년 동안 몸에 익은 휴대폰 유통의 형태가 뿌리부터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법이 만들어낼 사회적 충격도 클 것이다. 현재 나와 있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 관련 내용은 아직 초안이다. 전병헌 의원실은 2월중에 시장의 의견을 모아 최종안을 만들어 발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