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한국에서는 핀테크 열풍이다. 미국도 지난 2년 간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에 30억달러 이상이 투자되고 있다. 짐 콜린스가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위대한 은행으로 꼽았던 웰스파고도 지난해에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를 만들어서 핀테크 관련 회사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대표적인 핀테크 회사의 사례를 보면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첫째, 돈을 ‘쉽게 쓰게’ 해주는 결제 서비스다. 일반 소비자용 서비스면서 플랫폼 모두를 가진 페이팔이 대표 사례다. 페이팔이 인수한 플랫폼 솔루션 회사 브레인트리, 스트라이프, 신용카드 단말기를 대체하는 스퀘어 등도 이에 속한다. 소비자는 물건값을 쉽게 결제하고, 서비스 공급자는 결제 플랫폼이 없어도 남이 만든 것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
둘째, 돈을 ‘잘 쓰게’ 하는 개인 금융 서비스다. 내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체계적으로 비용을 통제할 수 있을지, 내 신용등급의 현재 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지 등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다. 인투이트가 인수한 민트, 크레딧 카르마 등이 대표적이다.
셋째, 돈을 ‘쉽게 잘 빌리게’ 돕는 대출 서비스다. 한국 지하철에 많이 붙어 있는 ‘돈 놓을 분, 돈 쓸 분’이 바로 그 플랫폼이다. 은행은 예금을 싼 이자로 빌려 더 높은 이자로 대출해주고 차익을 가져가는 예대마진을 취한다. 핀테크 대출 서비스는 은행을 제치고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과 기업이 직접 대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소액 대출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예금보다 높은 이자율로 투자를 유치한다. 렌딩클럽이나 프로스퍼 등이 대표적인 회사다.
마지막으로, 돈을 ‘잘 굴리게’ 하는 자산운용 서비스가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펀드가 전문투자자가 직접 운용하는 펀드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제는 개인도 쉽게 자신의 취향 및 투자 방향에 관한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화된 자산배분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자산운용 플랫폼이 등장했다. 베터먼트와 웰스프론트 등이 있다.
이 밖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나 금융정보 등 서비스가 있으나, 이미 온라인 증권이나 각종 인터넷 서비스에서 제공되고 있으니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는 듯하다. 사실 중요한 건 이런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인프라다.
규제
핀테크라고 해서 마음대로 서비스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대출·운용 등은 해당 영역에 규제가 존재한다. 모든 금융거래에도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규제가 있다. 그런데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혁신이 가능하게 돕는다.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금융 사기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가 진다. 허위 거래가 일어나면 일반 소비자는 “내가 한것 아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사실관계는 금융회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금융회사는 보안 분야에 가장 많이 투자한다. “둘째도 보안, 셋째도 역시 보안”이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JP모건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한국은 반대로 알고 있다. 소비자가 금융 사기를 입증할 책임을 지는 듯하다. 금융회사는 정부가 제시하는 소위 ‘공인’ 보안시스템만 갖추면 그만이다. 보안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과 규모를 갖춘 금융회사가 보안에 투자해야 하는데, 오피스 소프트웨어도 정품으로 사기 힘든 개미들이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하는 비정상적인 환경이다. 금융 사기 입증 책임을 금융회사에 지우면, 금융회사가 먼저 나서서 허술한 ‘공인’인증체계를 치울 것이다. 얼마 전에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금융기관의 책임을 줄여준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잘못된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API
위에 미국내 다양한 핀테크 회사들을 분류해 봤다. 여기서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API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컴퓨팅 등 모든 네트워크 기반 서비스의 뿌리다.
금융 서비스 역시 연결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은행이 계좌정보, 지출 내역에 접근할 수 있는 API를 제공하지 않으면 개인 금융 관리 서비스는 불가능하다. 페이팔을 이용한 간편결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요들리라는 회사가 주요 은행 API를 제공한다. 블룸버그 같은 곳도 자사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API를 제공한다. 비록 값비싼 블룸버그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금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며, 보안 수준을 설정하지 않고, 다른 애플리케이션과의 연결이 가능한 표준화된 API를 제공하지 않으면 핀테크에 금융 데이터가 활용될 범위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은행만큼 데이터를 많이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를 개발할 잠재력이 가득한 곳도 흔치 않다.
이런 서비스를 은행이 독자적으로 제공할 수는 없나? 물론 있다. 그러나 쓰기 나쁜 서비스가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본다. 어떻게 하면 은행이 보다 개방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결국 서비스 경쟁이 답이다. 한국에서도 이것이 가능할까? 이런 부분은 오히려 정부가 주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은행권 및 관련 업계와 정보 공개에 관한 표준화 가이드라인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은행 개방 협의체’(Open Bank Initiative)라고 할까.
규제와 API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잘못된 생각도 있을 것이다. 금융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풀어야 할 빗장이 많은 분야다. 하지만 서비스와 규제의 순서를 따져야 한다. 혁신적인 서비스는 규제를 변화시키면서 산업을 만들곤 한다. 핀테크와 함께 한국 은행이 글로벌한 사업을 전개할 역량을 갖추면 좋겠다. 규제 역시 혁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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