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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점자 스마트시계, 뇌파 치료 밴드…따뜻한 웨어러블 기술들

스마트폰은 아무나 간단히 넘볼 수 있는 사업 영역이 아니다. ‘드론’은 중국 업체가 꽉 잡고 있고, ‘짝퉁’엔 관심 없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차린 이들은 어떤 영역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을까. 머리에 둘러 알츠하이머를 치료해주는 기기. 손목에 두르면, 척추와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기술. 혹은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고자 손목시계 모양의 웨어러블 제품을 개발 중인 업체까지. 몸 위에 길이 있다. 이건 사람의 몸에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찾는 국내 하드웨어 스타트업에 관한 보고서다.

① 피부 관리, 척추 교정…웨어러블에 양보하세요
② 점자 스마트시계, 뇌파 치료 밴드…따뜻한 웨어러블 기술들

■ 닷 : 손으로 읽는 스마트워치

시각장애인은 점자로 세상과 소통한다. 점자는 종이에 홈을 내고, 돌기를 어떻게 튀어나오도록 하는지에 따라 문자를 달리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말한다. 여섯 개의 홈으로 영문 알파벳과 우리말 자음과 모음, 숫자를 모두 표현할 수 있다.

PC에서는 어떨까. 시각장애인들도 점자를 읽고 쓸 수 있도록 돕는 전용 기기를 활용하면 디지털 제품과 소통할 수 있다. 이를 ‘점자 정보 단말기’라고 부른다. 모니터에 출력된 문서를 점자로 변환해 한 줄씩 표현해주는 장치다. 하지만 점자 정보 단말기의 가격은 보통 200만~500만원이 넘는다.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가격이다.

또래 대학생 4명이 뭉친 스타트업 닷(dot)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 중이다. 이름은 똑같이 ‘닷’이다. 일반적인 스마트워치처럼 생겼지만, 디스플레이 대신 점자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듈이 탑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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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성 닷 디자인총괄, 성기광 하드웨어 총괄, 타이투스 챙 소프트웨어 총괄, 김주윤 대표(왼쪽부터)

기존 점자 정보 단말기는 전기자극에 세라믹 판이 구부러지는 원리를 이용해 돌기를 표현한다. 세라믹 판의 길이가 일정 수준 이상 돼야 돌기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구부러지므로 모듈 하나의 크기가 크다. 가격도 비싼 것은 물론이다. 닷은 점자를 표현하는 모듈을 ‘네오디뮴’ 자석으로 바꿨다. 자석 위에 코일을 장치하고, 전기신호에 따라 돌기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시계 형태로 디자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를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스마트폰과 연동하면, 스마트폰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닷의 점자로 변환해 읽어줄 수 있다.

“닷의 핵심 기능은 크게는 3가지예요. 하나는 시간을 표시해주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결돼 점자로 정보를 받아오는 것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마이크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시각장애인들이 평소 메모를 하거나 할 때는 음성메모를 자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밖에 알림을 촉감으로 알 수 있도록 진동기능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스마트폰과 닷은 저전력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 중 하나인 ‘블루투스LE’로 연동된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

닷의 가까운 목표는 시각장애인이 디지털 정보를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점자로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지만, 넓은 시각에서는 점자를 읽지 못하는 이들도 점자를 익힐 계기를 만들겠다는 데 있다.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지 못하는 이들의 비율이 전세계적으로 95% 이상이라는 게 일반적인 추산이다. 이른바 ‘점맹률’이다. 점맹률이 이렇게 높은 상황에서 점자 웨어러블 기기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김주윤 닷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점맹률이 90% 이상인데, 그 원인 중에는 점자를 배워도 쓸 데가 없다는 점, 점자를 배우기 위한 기기의 가격이 매우 높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점자책으로 만들어진 성경책이 총 2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아세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을 우리가 기술로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닷이 개발 중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기기 ‘닷’

점자책은 관리가 까다롭다. 종이에 세긴 돌기가 눌리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 한다. 책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보통 2인용 밥상 정도 크기다. 가격도 비싸다. 성경 한 권을 점자로 바꾸면 무려 24권이나 된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점자 정보 단말기는 국내외 몇 개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찾는 이도 많이 없고, 가격도 500만원이 넘는다. 점자를 배우려는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부족한 열정이 아니라 바로 터무니없는 환경에 있다.

웨어러블 시계 닷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학생 4명이 뭉친 결과물이다. 기존 점자 정보 단말기보다 20배 정도 싼 가격에 누구나 편리하게 스마트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다. 점자를 스마트폰에 엮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 점자를 활용하려는 시각장애인도 늘어나지 않을는지. 닷의 젊은이 4명은 앞으로 이같은 적정기술이 점맹률을 낮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웨어러블 모양의 닷 이후 이들의 계획은 태블릿 형태의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다. ‘아이패드’와 비슷하게 생긴 판에 점자 정보를 기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한 번에 한 줄만 표현할 수 있는 기존 점자 정보 단말기와 비교해 훨씬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줄을 써야 표현할 수 있는 수식이나 그림도 표현 가능하다. 쉽게 말해 ‘점자 전자책’, ‘점자 킨들’이 되는 셈이다.

성기광 닷 하드웨어 총괄은 “기존 점자 정보 단말기가 한 줄만 표현하다보니, 엄마가 시각장애인 아들에게 ‘산’을 설명할 수가 없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또, 세로로 나열된 정보도 표현하기 어렵고, 그래프나 수학 공식도 안 되죠.”

웨어러블과 태블릿 형태의 점자 기기 이후에는 닷의 핵심 기술을 모듈화할 예정이다. 점자 모듈을 독립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 특히 공공기관이나 시설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의 디지털 버스노선도나, 은행 ATM의 모니터와 찰떡궁합이다. 닷이 만든 점자 모듈을 원하는 곳에 끼우기만 하면 그만이다.

닷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모양의 제품을 올해 12월 안에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 와이브레인 : 뇌파로 치매 치료

“뇌 활동을 측정하고, 뇌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와이밴드는 두피 밖에서 미세한 전류를 흘려 원하는 곳에 전기자극을 주고, 뇌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죠. 미세한 전기자극을 전두엽에 활용해 인지기능과 단기기억 능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와이브레인의 ‘와이밴드’는 치매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 중인 제품이다. 뇌 중에서 인지능력과 단기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은 전두엽이다. 이마에 위치한 부분이다. 와이밴드를 이마에 쓰면 미세한 전기자극이 발생해 뇌를 활성화한다.

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는 “와이밴드는 뇌파를 측정하고, 궁극적으로 뇌파를 능동적으로 바꾸는 기술로부터 탄생한 웨어러블 제품”이라며 “기술을 좀 더 손쉽게 치료에 이용할 수 없을까 고민해 탄생한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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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

뇌세포는 무수한 ‘뉴런’들로 이루어져 있다. 뉴런은 서로 ‘덴드라이트’라는 이름이 붙은 가지 모양의 가닥으로 연결돼 있다. 덴드라이트 끝에는 ‘액손’이라는 다리가 있는데, 이 부분이 미세한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 통신을 한다. 이런 작은 활동이 모여 덩어리가 되고, 덩어리가 모여 그룹을 이루면서 사람의 뇌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기능을 하게 된다.

와이밴드는 전두엽에 미세한 전기자극을 흘린다. 세포가 수축하고, 세포 사이에 통신이 어려워져 점차 퇴행하는 것이 치매다. 이 퇴행성 증상을 전기자극으로 개선하는 원리다. 물론, 전기자극을 주는 기술인 만큼 하루에 자주 쓰면 안 된다. 하루에 한 번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 치매를 앓고 있는 이들이 사용한 것을 잊고 또 쓰려고 하면 경고음도 울리도록 했다. 매일매일 치료한 결과는 와이밴드 속 메모리에 저장되고, 추후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의사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료를 진행한다.

단순한 웨어러블 기기가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기인 만큼 아직은 많은 단계의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 현재 와이브레인은 국내 여러 대학병원과 손잡고 수백여명 단위에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와이브레인은 와이밴드를 추후 의료 플랫폼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짰다. 병원과 환자 사이에 둘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환자의 뇌 상태를 의사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종종 차세대 기술로 불리는 이른바 ‘원격의료’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역시 국내에서는 환자 정보 보호 규제를 이유로 당장은 어렵다. 와이브레인이 정부의 원격의료 규제개혁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까닭이다.

이기원 대표는 “모바일 플랫폼 개발과 스마트폰에서 와아밴드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모바일 앱 개발 등 뇌 치료 분야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와이브레인을 따르면, 와이밴드의 임상시험 결과는 2016년 상반기 끝날 것으로 보인다. 와이브레인은 결과를 바탕으로 식품의약안전처의 인증 등 상용화에 필요한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