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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모든 것이 연결된 사무실, 천국일까 지옥일까

모든 것이 연결된 사무실, 천국일까 지옥일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남쪽 상업지구 쥐다스에 자리 잡은 사무용 빌딩 ‘디 에지’ 내부 모습. 빌딩 관리자들은 카페에서 어떤 음료가 가장 잘 팔리는지, 소모품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 ‘스마트시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 도시를 변화시키겠단 이야기인데, 정작 시민들에겐 잘 와닿지 않는 말입니다. 때마침 지난 11월6일부터 24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 스마트시티 마스터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는데요. 스마트시티 전략을 내놓았던 런던·바르셀로나·암스테르담 등 유럽 3개 도시를 돌아보는 일정이었습니다. 각 국가와 도시 상황에 따라 스마트시티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른데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각 도시에서 만난 이들이 보여주거나 들려준 새로운 움직임 가운데 ‘내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고민을 던져준 세 가지 장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암스테르담 사무용 빌딩 ‘디 에지’
센서 2만8천개 온도·습도 관찰
빌딩 내 사람·기기 모두 연결해
쾌적한 환경 만들고 유지비 절감
직원 감시·통제에 쓰일 우려도

현재 화장실을 사용하는 직원들은 3명이다. 둘째 칸 휴지는 5시간 뒤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지금 채워넣는 것이 좋다. 4번 회의실은 사흘째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당장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저 직원이 마시고 있는 커피 종류가 무엇인지, 지금까지 어떤 음료를 마셨는지 알고 있다. 어둠이 깔리면 로봇청소기 같은 모양의 작은 기기가 곳곳을 살핀다. 야간 경비원 대신 나를 지키는 감시로봇이다.

‘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남쪽 상업지구 쥐다스에 자리한 사무용 빌딩 ‘디 에지’(The edge)다. 2014년 9월 완공된 15층, 4만㎡ 면적의 건물로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 사옥으로 지어졌다. 딜로이트 외 다른 입주사 직원까지 합쳐 모두 5천명이 일하고 있다. 사무용 빌딩은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자, 수많은 직장인들의 일상을 담는 그릇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및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하는 현실과 디지털기술 발전 흐름에 따라 사무용 빌딩도 변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디 에지 전경 사진. 로날트 틸레만 제공

사무실에도 첨단기술 적용

지난달 21일 화요일 오전, 바깥에서도 사무 공간이 훤하게 보이는 디 에지 정문에 들어섰다. 전면엔 유리가 사용됐으며 바닥부터 천장까지 뻥 뚫린 중앙공간(아트리움)이 인상적이었다. 햇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설계라고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보니, 변기 위로 빗물을 사용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디 에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친환경’이다. 영국 친환경건물 인증(BREEAM) 기관인 브레(BRE)는 이 빌딩의 전기 사용량이 비슷한 건물에 견줘 70%가량 적다고 평가했다. 빌딩 지붕과 외벽, 인근에 위치한 암스테르담대학 지붕에 약 5900㎡ 면적의 태양광 패널을 깔아 생산한 전기를 사용한다. 빌딩 지하 약 130m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는데 여름철에 발생하는 뜨거운 물을 저장해뒀다 실내 온도가 내려가면 이를 펌프로 끌어올려 난방에 활용한다. 반대로, 날이 따뜻해지면 차가운 물을 끌어올려 건물 내 온도를 낮춘다.

또다른 특성은 주차장부터 커피머신,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건물 내 모든 것들이 인터넷망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건물 곳곳엔 2만8000개의 센서가 설치돼 있는데, 실내외 온도와 조명 밝기, 습도와 이산화탄소 수준, 사람들 움직임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중앙 서버에 전송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분석해 사무실 조명과 냉난방 스위치를 적정하게 조정하며 에너지를 절감한다. 직원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빌딩과 연결돼 있다. 직원들 개개인에게 따로 책상을 배정하지 않고 일반적인 책상부터 서서 일하는 책상, 채광이 좋은 아트리움 공간 등 어디서든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앱을 통해 비어 있는 책상이나 회의실, 사물함을 확인한다. 또 작업 환경의 온도나 조명 밝기를 조정할 수 있다. 쾌적하고 편안한 근무 환경을 조성해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네덜란드에선 심신 질환을 사유로 최소 임금의 70%를 보장받는 유급 휴가를 2년까지 낼 수 있다. 기업으로선 병가를 줄이기 위해 작업공간 개선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디 에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작업 환경의 온도나 조명 밝기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오브이지 리얼 에스테이트’ 누리집 갈무리

디 에지를 개발한 네덜란드 부동산 기술회사 ‘오브이지 리얼 에스테이트’(OVG Real Estate)의 최고기술책임자 에리크 위벌스는 “건물을 짓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호텔이나 비행기처럼 사무용 빌딩도 하나의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선 매주 수요일 오후 학교가 문을 닫기 때문에 직원들 70%가량이 사무실을 비운다. 그런 날은 모든 사무실 공간을 열 필요가 없다. 또, 회의가 예정돼 있지 않다는 걸 미리 파악하면 굳이 청소할 필요가 없지 않나. 사무공간 이용 패턴을 모니터링해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공간은 입주사가 다른 용도로 개조할 수 있다.”

회사와 실시간 연결된다면?

모든 사물을 연결하고,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해 편리함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기술은 사회 전반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지켜낼 수 있을까? 디 에지가 수집하는 정보 중에는 빌딩 내 사람들의 위치, 에너지 사용 습관, 커피 취향까지도 포함된다. 위벌스는 “(특정 정보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도록) 익명 정보를 수집한다. 우리는 통제 목적이 아닌 최적화된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할지 말지 선택권을 주었는데 83%가 정보 제공에 동의했다. 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올해 3월14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디 에지를 다룬 기사에서 “직원들이 회사와 연결을 끊고 싶어도 불이익이 우려된다면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을 것”이라며 2018년 5월 ‘개인정보 보호 일반규정’(GDPR)이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발효되면 기업들의 경우 이러한 운영 방식에 대해 재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016년 유럽의회는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개인정보 보호 및 통제권을 강화하고, 유럽연합 역내 개인정보의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개인정보 보호 일반 규정을 마련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데이터 수집자가 개인으로부터 정보 제공 동의를 받을 때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해야 한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연합 국가보다 노동법 규제가 약하거나, 개인정보 보호가 미흡한 사회에서는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이 일터에 적용될 경우 직원 감시용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심야 시간대만 활동하는 감시로봇. 디 에지엔 야간 경비원이 따로 없다. 사람들에게 신분증 확인을 요구하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으면 경찰에 상황을 바로 알리도록 돼 있다.

오브이지 리얼 에스테이트는 디 에지 인근에 ‘부티크 프로젝트’로 불리는 사무용 빌딩을 개발 중이다. 면적은 약 1만㎡로 디 에지에 견줘 작지만, 근무 환경 편의성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과 6만개에 이르는 센서가 사용될 예정이다.

암스테르담/글·사진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디 에지 맨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사진. 빌딩 전면엔 유리가 사용됐으며, 바닥부터 천장까지 중앙공간은 트여 있었다.
디 에지는 빗물을 저장해 화장실 변기물 등으로 재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