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새 안드로이드가 조용히 발표됐습니다. 어느새 안드로이드의 버전은 9.0으로 올라갔고, 이제까지 불리던 P라는 별명 대신 ‘파이(Pie)’라는 아주 간단한 이름을 얻었습니다. 뭔가 복잡한 이름들을 떠올렸다면 아쉽겠지만, 파이만큼 널리 알려진 디저트도 없지요. 이 새로운 운영체제의 정식 이름은 ‘안드로이드 9 파이’입니다.
구글은 지난 몇년 동안 규칙적으로 가을에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배포했습니다. 봄, 혹은 구글 I/O를 기점으로 안드로이드의 개발자 프리뷰가 공개되고, 가을에 정식으로 구글의 기기들을 통해 배포됩니다. 사실 이제 안드로이드는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완성이라고 해서 이제 더 이상 뭔가를 더할 게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이 거의 없이 기능들이 가다듬어지면서 기틀이 탄탄히 다져졌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대신 매년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놀랍게 변화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변화나 추가보다도 그 해에 주목받는 기술이나 사회적 요구 사항들이 기본적인 방향성을 정합니다. 구글은 올해 구글I/O에서 안드로이드의 세 가지 주제를 발표했습니다. ‘지능’, ‘단순함’, ‘디지털 웰빙’입니다. 바로 이 흐름을 통해 안드로이드의 변화를 바라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구글이 이 세 가지 주제를 풀어내는 방법은 인공지능에 있습니다. 구글의 관심사는 모바일에서 클라우드로, 그리고 다시 머신러닝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구글은 요즘 완전히 새로운 것들 만들어내기 보다도 기존에 있던 기술들에 머신러닝을 더해서 더 편리하게 만들거나,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목하는 추세입니다. 그 자체로 온전한 컴퓨터인 안드로이드 시스템은 머신러닝에 더 유리한 환경이지요.
머신러닝이 안드로이드에서 하는 일은 귀찮은 일들을 덜어주는 쪽에 있습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파이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페이지 첫 화면에는 ’네 가지 less’가 보입니다. adjust less, scroll less, charge less, tap less 등 네 가지인데 기기를 조정하고, 화면을 밀어 넘기고, 충전하고, 터치하는 것을 줄인다는 뜻이지요. 이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9 파이의 주제로 언급한 지능, 인텔리전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조정을 줄인다는 것은 설정을 자동화한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화면 밝기입니다. 그 동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조도 센서를 이용해 주변 밝기를 파악해서 화면을 조정했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는 맞았지만 어딘가 부족할 때가 있어서 상황에 따라 조금씩 손을 봐야 했습니다. 안드로이드 9는 이용자가 화면을 조정할 때 주변 밝기가 변하는 것과 장소 등 여러가지를 학습해 두었다가 이용자가 원하는 화면 밝기를 찾아줍니다.
충전을 줄여준다는 것은 배터리와 관련된 것입니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오래 쓰기 위해서 배터리의 용량을 늘리거나 반도체들의 전력 소비량을 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바로 소프트웨어에서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지에 대한 결정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밝기 조정도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구글이 이번에 집중한 것은 되도록 저전력 모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스마트폰을 편하게 쓰도록 하기 위해서 앱들이 미리 백그라운드에서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해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들어 페이스북 앱을 띄우기 전에 앱이 먼저 인터넷에 접속해서 새로운 피드들을 내려받아두는 것이지요. 그러면 서비스가 빨라졌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배터리와 데이터 소모가 크지요. 안드로이드 파이는 스마트폰을 언제 열어보고, 어떤 앱을 언제 쓰는지를 분석해서 앱들이 개별로 백그라운드 업데이트를 하는 대신, 한 번에 모았다가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오래 쉬게 하고, 켠 김에 한번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지요.
스크롤과 터치를 줄이는 것 역시 이용자의 습관을 따릅니다. 구글은 앱 예측, 앱 액션 등의 기능을 안드로이드 파이에 더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고 앱 서랍이나 검색창을 열면 당장 필요한 앱을 가장 위에 보여주기도 하고, 지금 전화를 걸 누군가나 지금 들을 것 같은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띄워주는 겁니다. 화면을 많이 넘겨서 찾을 필요도 없고, 키보드를 계속 눌러서 검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게 정확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은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구글은 머신러닝을 통해서 적어도 이용자의 마음을 알아맞출 확률을 높이겠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바로 ‘디지털 웰빙’입니다.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편리함을 얻었지만 지금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행복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하고, 밤잠을 설치게도 합니다. 스마트폰만 붙들고 사는 아이들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지요. 그래서 구글은 역설적이게도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규칙을 정해 두었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대시보드를 통해서 사용량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하루에 스마트폰은 몇 시간 동안 썼고, 어떤 앱을 얼마나 이용했는지 보여줍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스마트폰과 앱 사용 시간을 구체적으로 보고 나면 대부분 깜짝 놀랄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자극이 되지요.
그래도 조정이 잘 안되면 앱 사용 시간에 제한을 둘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앱을 완전히 못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각심을 주는 효과를 주지요. 이 외에도 구글은 밤에 시신경과 뇌를 자극하는 블루라이트를 없애기 위해서 화면을 완전히 흑백으로 만들어주는 기능도 넣었습니다.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 디지털 웰빙은 구글만의 일이 아니라 최근 운영체제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입니다. 이제는 시스템의 기능이나 기술적인 역할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면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내겠다는 원래의 방향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과도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능들이 스마트폰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안드로이드 파이는 어떻게 보면 거의 새로울 게 없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안드로이드 8 오레오에서 못 하던 일이 안드로이드 9 파이에서만 되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 이용자의 마음을 읽어 더 편리하게 하려는 시도가 더해지면서 서서히 차이를 만들어갈 겁니다. 겉으로는 비슷해도 속으로는 내 습관에 맞춰진 안드로이드폰이지요.
구글이 안드로이드 파이를 완성해 배포하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 아직 안드로이드 파이를 써보기는 어렵습니다. 구글이 직접 만드는 ‘픽셀’, 그리고 일부 제조사가 만든 제품을 빼고는 업데이트에 몇 달, 혹은 1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구글은 이 업데이트를 쉽게 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8 오레오에 ‘프로젝트 트래블(Project Treble)’이라는 기술을 더했습니다. 업데이트를 작은 모듈로 쪼갠 것으로 필요한 부분만 붙이면 복잡한 개발 과정 없이 간단히 안드로이드 업데이트를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입니다. 1년 전 구글의 약속이 안드로이드의 가장 큰 약점인 업데이트를 해결해줄 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출처 :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3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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