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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지상파에선 쓰레기 기획안 CJ에선 ‘ 대박’

“이것 보시면 참고가 될 거예요.” 한 지상파 방송사 PD가 기자와 헤어지고 난 후 카카오톡으로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글의 시작이 재미있다. 아내가 자기 몰래 1만원을 내고 CJ계열 케이블의 VOD를 무제한으로 보고 있는데, 덤으로 자신도 요즘 뜨고 있는 tvN 드라마 <미생>을 봤다는 것이다. 평소 케이블 채널이라면 눈엣가시로 여겼던 자신도 이렇게 재밌는데, 아내는 얼마나 재미있었겠느냐는 ‘자아비판’ 투의 고백으로 글을 담담하게 풀어갔다.

지상파 PD들조차 재미있게 본다는 <미생>이 CJ 드라마의 대표 브랜드라면 <삼시세끼>는 CJ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다. 배우 이서진과 2PM의 아이돌 가수 옥택연이 강원도 정선의 한 집에서 자급자족으로 하루 세 끼를 해 먹는, 아주 단순한 콘셉트를 가진 예능은 tvN을 통해 매주 금요일 안방에 전달된다. 그런데 금요일 밤 10시를 이 엉뚱한 예능이 제대로 잡아버렸다. <삼시세끼> 첫 회를 모니터링했다는 한 지상파 PD의 증언이다. “요즘 우리 팀장만 해도 월요일에 출근해 주말 시청률, 특히 <미생> <삼시세끼> 시청률을 보고 나면 ‘우리 어떻게 하느냐’면서 한숨을 쉰다.”

 



 
tvN 드라마 <미생>의 요르단 암만 촬영 장면. 장그래 역을 맡은 임시완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금요일 10시 사수’는 나영석 PD의 미션

지상파 PD들을 하나둘 만나봤다. 젊은 지상파 PD들 사이에서는 CJ E&M을 라이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했다. 이미 그건 오래된 버전이라며 “요즘은 패배감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격한 표현도 나왔다. <미생>과 <삼시세끼>가 지상파 방송국들에 던진 충격파는 셌다. 거꾸로 말하면 CJ E&M의 힘이 탄탄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요즘 금요일 밤 온라인 세상은 <미생> <삼시세끼> 이야기로 넘쳐난다. 커뮤니티든 SNS든 가리지 않는다. 금~토 오후 8시30분부터 방송하는 <미생>은 3회 만에 전국 시청률 기준으로 3%를 넘어서더니 5%대에 안착하며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삼시세끼>는 더 강력하다. 7.8%(11월29일, 닐슨코리아 조사)라는 숫자를 기록했다. 한 자리 숫자라고 우습게 볼 수 없다. 요즘 저 숫자도 못 넘는 지상파 드라마와 예능이 숱하다.

tvN 라인업의 시청률은 금요일 밤 저녁 식사를 한 후 tvN에서 방영하는 <미생>과 <삼시세끼>를 보며 주말을 맞는 시청자가 늘어났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상파 3사는 속앓이가 심해졌다. 금요일 밤 10시를 되찾기 위한 전략을 짜느라 분주하다. KBS를 예로 들어보자. 원래 이 시간대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편성했는데, tvN에 밀리자 유재석까지 앞세운 <나는 남자다>를 편성했다. 그런데 이것도 성적이 영 신통치 않다. 그래서 이제는 금요드라마 편성을 검토 중이다. 이 카드도 꺼내보고 저 카드도 꺼내보는 KBS의 편성 전략은 오직 하나, CJ E&M을 꺾어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CJ E&M은 이렇게 강해졌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사람’이다. tvN의 금요일 밤 10시는 이미 개인 브랜드가 돼버린 나영석 PD가 연출한 <삼시세끼>가 굳건하게 지킨다. CJ E&M의 한 PD는 “금요일 밤 10시 사수는 나 PD에게 주어진 미션 같은 것이다. 이 시간대를 성공시켜서 안정적인 블록을 만들라는 주문이다”고 말했다. 이른바 ‘나영석표 예능’은 tvN의 킬러 콘텐츠다. 인기를 끌었던 나 PD의 전작들인 ‘꽃보다’ 시리즈도 금요일 밤 10시 시간대를 관통했다. 주 5일이라는 라이프사이클을 노린 편성이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이 시간대가 약한 지상파를 공격하는 전략이었다. 지상파의 경우 월~목요일 사이에는 미니시리즈와 예능이 탄탄하게 배치돼 있고 시청자들 역시 그렇게 인식하지만 상대적으로 금요일은 무주공산이다. 이 틈을 나영석이라는 이름으로 파고들겠다는 게 CJ E&M의 전략이고, 이게 먹혀들고 있다.

  
나영석표 예능 <삼시세끼>는 지상파 방송국을 위협하는 CJ E&M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 tvN 제공

콘텐츠 사업은 결국 사람 싸움이다. 그런 면에서 나 PD는 CJ E&M 콘텐츠 그 자체나 다름없다. 돈을 벌어오고 시청률을 내고 격을 높이는 선봉장이다. <삼시세끼>는 그 스스로가 “첫 촬영 때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프로그램이다. 이서진과 옥택연이 수수를 베고 밥을 해 먹고 설거지하고 누워 있는 이 기획이 만약 나 PD의 전 직장 KBS에서라면 어떻게 처리됐을까.

“사람에 돈 아끼지 말라” 전략 통해

KBS의 한 PD는 “<삼시세끼>를 보니 1차는 이런 기획을 통과시킨 것 자체, 2차는 이런 기획을 살리는 것, 이 모두 나영석의 힘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특정한 내용이 없고 구성에도 특이 사항이 없다. 심지어 출연진들조차도 첫 회부터 이 프로그램은 망했다고 그런다. 그런데 이걸 살린 게 음악·자막·효과음이다. 여기에 강아지 하나, 염소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캐릭터를 부여하며 살려냈다. 이건 지금의 KBS에서는 루즈하다고 통과 안 시켜주는 기획이다. 수수 베고 주저앉고 설거지하고? 절대 방송 못 나간다.”

이런 경직된 ‘올드’ 방송국을 벗어나 더 자유롭게 찍고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지상파 PD들이 CJ E&M으로 건너왔다. 특히 KBS에서 온 이가 많다. 드라마는 한정돼 있지만 PD들이 많아 쉽게 ‘입봉’할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구조, 시나리오를 올리면 “이건 젊은 애들만 보는 것 아니냐”며 거부당하는 구조는 젊고 감각 있는 PD의 눈을 외부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 기획을 TV로 실현시키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CJ로 넘어와 머릿속 구상을 현실로 만들어냈고, 그들이 결과적으로 CJ E&M을 먹여 살린다. 나 PD,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 <미생>을 만든 김원석 PD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사실 CJ그룹의 미디어 5개 회사가 합병해 CJ E&M이 된 게 2011년이니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대기업이 방송 콘텐츠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하자 “원래 이쪽 분야는 이익을 내기 어렵다” “비전이 없다”는 지적이 줄기차게 제기됐고, CJ E&M은 견제받았다. 수익이 어려워도 수익을 내야 하는 게 기업이니 자연스레 예능과 드라마 채널인 tvN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요리 채널인 ‘올리브’, 스타일 채널인 ‘온스타일’과 ‘스토리온’, 게임 채널 ‘온게임넷’, 음악 채널인 ‘엠넷’ 등 보유하고 있는 채널 상당수가 케이블업계에서 1위다. 하지만 tvN만은 달랐다. 지상파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채널은 자신들이 1위였기에 사람을 끌어올 외부 시장이 없었지만, tvN의 경우에는 지상파에서 데려오면 됐다. CJ E&M 관계자는 “이미경 부회장은 콘텐츠업이 사람 싸움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뽑아오는 데 드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일단 뽑았다”고 말했다.

PD들만 ‘사람’에 해당하는 게 아니다. 케이블을 기피하던 외주 스태프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 케이블을 꺼리던 그들에게 “지상파보다 높은 액수를 주겠다”며 지상파와 같은 퀄리티로 찍을 수 있는 스태프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 높은 개런티를 제시하며 마이너 채널의 한계를 극복했다. CJ E&M 출범 직후인 2011년 10월 방영된 <뱀파이어 검사 시즌 1>의 주인공을 맡은 연정훈에게 지급된 출연료는 지상파에 출연할 때보다 2배 정도 높았다고 한다. 지상파에서 영입한 PD, 우수한 외주 스태프, 그리고 톱스타 배우 등 사람을 확보하고 찍은 작품들이 나오면서 CJ E&M의 격이 높아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위상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점점 선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을 확보하자 또 다른 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CJ E&M이 변했다. “얼토당토않는 기획을 내놓아도 젊은 PD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분위기가 있다”(CJ 4년 차 공채 PD)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제조업 기반의 CJ그룹 정서는 콘텐츠를 만드는 E&M과 종종 충돌했다. E&M 대표가 하는 일에 대해 CJ그룹 지주사에서 태클을 거는 일도 있었고, E&M 내부에서도 방송 제작 부서보다 마케팅 등 비제작 부서의 입김이 강하게 작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상파 시청률이 떨어지고 영입파 PD들이 들어온 뒤 CJ E&M 채널들의 시청률이 올라갔다. 새로운 것, 독특한 것이 먹혀들었고 기존 채널들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CJ 채널, 특히 tvN이 메워주면서 회사의 변화도 빨라졌다.

일단 CJ E&M은 지금 tvN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 중이다. PD들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돼 있고 회수가 된다는 전제만 있다면 “제작비를 아끼지 말라”는 게 내부 분위기다. 회사 자체는 메이저 미디어를 지향하지만 20~40대 시청자라는 타깃을 정확하게 정해 마이너한 작품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도 전략적이다. 타깃이 명확할수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광고를 유치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지상파들이 방송사 프리미엄에 기대며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을 충족시키지 못한 반면, CJ E&M은 플랫폼의 한계를 넘기 위해 콘텐츠에 투자를 많이 했다”고 분석했다.

  

CJ 재벌기업 문화 탈피가 관건

여기에 CJ E&M 홍보팀의 힘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쪽(CJ E&M) 홍보팀 대단하다”며 관련 업계 모두가 인정한다. 새로운 작품의 기자간담회와 현장 공개로 기사 수를 늘리고, CGV 등 극장 광고까지 동원하는 등 회사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작품을 포장한다. 이렇게 얻은 바이럴(입소문)이 강할수록 반향을 얻기도, 광고를 따오기도 쉽기 때문이다.

새로운 만듦새로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CJ E&M이지만 변화의 추세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온미디어 출신들이 좀 더 가벼운 조직을 모색하고 있어서다. 2010년 CJ에 편입된 온미디어는 슈퍼액션·OCN·온게임넷·캐치온 등 10개 채널을 보유했던 케이블계의 강자였다. 합병 이후 김성수 CJ E&M 대표 등 온미디어 출신 인사들이 방송 쪽 주요 보직에 앉았는데, 좀 더 콘텐츠 기업에 적합한 동기부여를 모색 중이다. CJ라고 하는 재벌기업 문화에서 방송 기업 E&M을 분리시키는 것, 그래서 좀 더 방송에 어울리는 기업 문화를 가지려는 시도가 성공한다면? 아마 CJ E&M과 지상파의 본격적인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될 것 같다. 

 

‘입소문’에서 맥없이 밀리는 지상파 



‘바이럴(입소문)’은 좀 더 현실적이다. 느낄 수 있어서다. ‘바이러스’를 뜻하는 바이럴은 온라인에서의 확산을 말한다. 소문나고 공유되고 반향이 일어나는 데 더 민감한 세상이 됐다. “과거와 다르다. 시청률 20%가 나오고 기사 1~2개 나오는 것보다는 시청률 5%라도 기사 20개 나오는 게 더 좋다.” 한 연예 매니지먼트사 실장은 바이럴에 더욱 구미가 당긴다고 했다. 요즘 바이럴은 광고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배우가 광고를 따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시청률보다 오히려 바이럴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대세는 바이럴이고 이 부분의 강자가 CJ E&M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일단 ‘관리’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프로그램을 대신 확산시켜줄 기자들 관리에 철저하다. 그리고 콘텐츠의 속성도 바이럴에 어울린다. 20~40대를 정확하게 타깃으로 잡은 프로그램은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공유되기 좋은 소재다.

시청률로 위안을 삼던 지상파가 최근 들어 바이럴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이런 변화 때문이다. 예전처럼 방송이 나가기만 하면 보는 시대는 지났고, 20~40대를 CJ E&M과 JTBC 등 종편에 뺏기고 있다는 위기의식, 그에 따른 광고나 협찬 부진 등이 이유다. KBS는 외부 빅데이터업체를 통해 바이럴을 측정하고 있다. 지난 7월 취임한 조대현 KBS 사장이 여기에 관심이 많다는 후문이다. MBC는 그런 역할을 하는 별도 담당 부서를 만들어 자사 프로그램을 알리고 이슈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바뀐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면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요즘은 시청자들이 보면서 검색도 한다. 궁금한 게 나오면 바로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까지 감안해서 광고할 때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능동적인 시청자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CJ E&M과 뒤쫓는 지상파, 또 다른 전장이 이곳에 형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