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MWC(세계이동통신박람회)에서 ‘5G로 가는 길’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고객이 원한다면 굳이 통신기업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장동현 SK텔레콤 사장)
“기가토피아로 올 매출 2조 달성할 것.” (황창규 KT 회장)
“명실상부한 탈통신 세계 1등 기업으로 도약하겠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이통 3사의 수장들이 잇따라 탈통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성장세가 정체된 유·무선 통신 사업 대신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 홀로그램 등 비통신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의지가 읽힌다.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5721만명(2014년 말 기준). 우리나라 인구(약 4900만명)보다도 많다. 포화상태다. 이는 최근 이통 3사의 정체된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KT는 전년 대비 3891억원, LG유플러스는 4505억원 매출이 줄었다. SK텔레콤은 5620억원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되레 1860억원 감소했다. 치열한 광고 경쟁으로 마케팅비를 많이 쓴 탓이다.
통신사의 수익성 지표인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SK텔레콤과 KT는 전분기 대비 ARPU 성장률이 지난해 3분기 각각 1.1%, 3.6%에서 지난해 4분기 0.8%, 1.3%로 0.3%포인트, 2.3%포인트씩 둔화됐다. 3G 가입자들의 4G(LTE) 전환이 그간 많이 진행된 탓에 ARPU 추가 상승을 기대할 만한 교체 수요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통사들은 저마다 비(非)통신 사업을 강화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가장 유망해 보이는 건 단연 사물인터넷 분야다. 자율주행차, 웨어러블 기기, 일반 가전 등 모든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업계에선 2020년께 IoT가 상용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IoT가 대중화되면 통신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살 때만 이통사에 가입하지만, IoT 시대에는 자동차나 냉장고를 살 때도 이통사와 2년 약정을 맺고 결합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이통사로선 그야말로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오는 2020년 260억대의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돼 2조달러(약 2000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예측한다.
IoT는 모든 사물에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만큼 빠른 속도와 정보처리 기술이 필수다. 이를 가능케 할 기술은 5G(잠깐용어 참조)다. 5G는 4G보다 전송속도가 수백 배 빠른 차세대 통신기술로 각광받는다. “본격적인 5G 국제 표준화는 내년에 시작돼 2019~2020년에 첫 번째 버전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반으로 한 상용시스템 개발 일정이 촉박하다”는 게 KT 설명이다.
5G 기술 국제표준규격 미정
이통 3사 선도 이미지 위해 각축
“3G·4G 서비스 개선에도 관심을”
문제는 5G 기술의 국제표준규격이 아직 안 정해졌다는 것. 어떤 기술이 표준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현재 이통 3사는 저마다의 방식대로 5G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자사 방식이 기술 표준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설령 안 돼도 기술 표준이 정해질 때까지는 선도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당장 눈에 띄는 건 KT다.
KT는 지난해 야심 차게 선보인 ‘기가인터넷(기존 초고속인터넷보다 10배 빠른 인터넷)’이 좋은 반응을 얻자 ‘기가’라는 브랜드를 적극 활용 중이다. 황창규 회장은 지난 2월 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UNESCO) 본부에서 ‘기가토피아(초당 1기가 속도로 모든 사물이 연결되는 세상)’를 역설한 데 이어 3월 MWC 기조연설에서도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유선 시장에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무선 시장에서도 이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경쟁사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사물인터넷은 무선으로 연결되는 서비스다. 유선에 강점이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와이파이 등 일부 무선 서비스는 유선 장비의 품질에 좌우된다. 무선의 근간이 되는 유선망부터 기가급으로 조기 업그레이드해 5G 상용화에 선제적으로 준비할 것”이라고 되받았다.
SK텔레콤은 자사 네트워크 품질의 우수성을 적극 알린다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기술력 과시 전법이다.
지난 MWC에서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LTE보다 100배 빠른 속도(7.55Gb㎰)를 시연한 게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10월에는 5G 네트워크 진화 방향성을 제시한 ‘5G 백서’를 국내 최초로 발간했다. 또 5G의 5가지 키워드(고객 경험, 연결성, 지능화, 효율성, 신뢰성)를 국제 통신 단체에서 발표하는 등 5G 기술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기술력을 자랑하는 건 알겠으나, 워낙 전문적인 내용이다 보니 일반 소비자들에게 마케팅 효과를 거두기엔 다소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한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과 KT의 전략을 동시에 구사 중이다.
우선 KT의 기가토피아처럼 LG유플러스 전매특허인 ‘홈IoT’ 브랜드를 강조한다. 지난 MWC에선 ‘홈매니저 솔루션(음성 인식 기능을 기반으로 에어컨, 조명 등 주요 가전을 제어하는 서비스)’과 ‘매직미러(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피부 타입을 측정하면 측정 결과를 거울 화면에 표시해주는 서비스)’ 등을 선보였다. 또 SK텔레콤처럼 5G 기술 경쟁력을 과시한다. 와이파이 주파수인 5.8㎓ 대역과 광대역 LTE를 묶어 LTE보다 4배 빠른 ‘LTE-U’ 기술을 시연한 게 그 예다. “향후 이 기술이 진화해 총 480㎒ 폭의 와이파이 가용주파수와 LTE 대역을 묶을 수 있게 되면 기가급 5G 서비스 수준의 속도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점에서 잠재적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게 LG유플러스 측 설명이다. 단 양 사 전략을 모두 쓰다 보니 어느 것 하나에도 특화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흘러나온다.
이처럼 5G 시대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이통 3사 간 경쟁이 치열하지만 소비자들에겐 당분간 먼 나라 얘기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5G 상용화까지는 5년여의 긴 시간이 남은 데다, 5G는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기 힘든 기술 이슈이기 때문.
한 업계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선도적인 이미지를 얻기 위해 벌써부터 5G를 꺼내들고 나왔지만 소비자들에겐 생소한 감이 많다. 사실 LTE도 우리나라에서나 대중화됐을 뿐, 해외 많은 나라들은 아직 4G가 도입된 지도 얼마 안 됐다. 이들은 기존 4G망 투자비 회수와 신규 투자 여력 부족 등으로 5G망 도입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기존 설비투자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는 데만도 약 5년이 걸린다”며 “이런 상황에서 5G를 내놓는다면 우리나라밖에 쓰는 곳이 없어 기술 표준화는 얘기도 못 꺼낼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선점을 위한 물밑 연구는 계속하되, 당장 3G나 4G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서비스 개선에도 더 신경을 쓰라는 주문이다.
잠깐용어 *5G
현재 대중화된 LTE(4G) 이후 2020년부터 도입될 차세대 이동통신 규격이다. LTE보다 적게는 100배, 많게는 1000배가량 빠른 전송속도를 이용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데이터 트래픽을 원활히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3차원 홀로그램, 초고화질 동영상 전송·영상통화, 360도 가상현실, 다시점 방송 서비스, 자율주행차·서비스 로봇 제어 등 새로운 미래 기술이 상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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