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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단말기, 장애인 접근성 현저히 떨어져

 무인단말기, 장애인 접근성 현저히 떨어져

 

무인단말기에 대한 정보접근성 간담회 열려

 

무인시대가 열리고 있다. 극장이나 철도, 공항에서 표를 끊을 때, 햄버거를 주문할 때 사람 대신 기계와 마주하는 건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무인단말기(키오스크)를 통해 인건비 및 운영비를 줄일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서도 줄을 길게 서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 하지만 편리와 효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오히려 늘어나는 무인단말기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다. 국내 무인단말기들이 비장애인 입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탓이다.

 

롯데리아에서 운영하는 무인단말기

 

무인단말기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은 지난 4월17일 정보접근성 간담회를 열고 서비스 제공자와 장애인단체 등과 현안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논의했다. 이날 참석한 이용석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장애인 당사자로서 무인단말기 이용은 불편하고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다”라며 “지하철 전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도입 요구 당시엔 비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지만, 설치 이후 모두가 이용하고 있듯 장애인을 위한 정책의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무인단말기

 

현재 국내에 설치된 무인단말기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휠체어에 탄 지체장애인이 쓰기에 부적합하다. 이날 문현주 충북대 박사가 조사한 무인단말기 접근성 현황에 따르면 다양한 영역에 설치된 무인단말기들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철도공사, 한국공항공사, 맥도널드 등에 운영되는 무인단말기들은 공통적으로 터치스크린이 높게 설치돼 휠체어 사용자가 쓰기에 어려웠다. 또 모든 정보가 시각으로만 제공돼 시각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 모든 조작이 터치로만 이뤄진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주관한 정보접근성 간담회 (사진=김병훈 인턴 기자)

 

\농협 금융자동화기기의 경우 부스 입구에 경사로가 없어 접근 자체가 어려운 문제가 발견됐다. 정보의 출력 시간이나 입력 제한 시간이 비장애인 기준에 맞춰져 몸이 불편한 사용자가 쓰기에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제한시간 초과를 알리고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또 시각 장애인을 위해 이어폰을 끼우면 음성으로 내용이 안내 되는 서비스가 마련돼 있지만, 이어폰이 빠질 경우 스피커로 내용이 그대로 출력돼 개인 정보가 누출될 우려도 있다. 이번 조사는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과 ‘금융자동화기기 접근성 지침’을 기준으로 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윤재호 차장은 금융권 자체적으로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를 꾸려 ATM 기기에 대한 표준을 개발하고 적용하고 있으며, 현재 장애인을 위한 CD/ATM 표준 개정 초안이 마련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에 추가된 무인단말기

무인단말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법안도 마련되고 있다. 지난 2월9일 발의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에는 무인단말기의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에 새롭게 추가되는 15조 제3항은 “무인단말기를 설치·운영하는 경우 장애인이 이를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날 간담회에 참석해 “무인단말기가 늘면서 장애인은 음식 주문이나 금융거래, 비행기 티켓도 끊기 힘든 상황이며 최소한의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다”라고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강제력이 약하고 제재 조항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실효성이 낮을 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 (사진=김병훈 인턴 기자)

 

 

구체적인 표준안 마련한 미국

무인단말기 문제에 대해 미국은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ADA에는 무인판매기의 접근성 디자인에 대한 표준이 마련돼 있다. 설치장소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항을 명시하고 있으며 기기 입력 버튼을 누르는 힘을 최대 5파운드로 제한하고 1m 높이에서 기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기능별로 세밀한 표준을 마련했다. 또 항공기 접근 보장법(ACAA)을 통해 항공사의 무인단말기에 대한 세부적인 표준을 제공하고 있다. 상세한 기술 표준과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업체들이 무인단말기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법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기업이 가격 문제로 접근성 디자인을 미준수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에서 적극 지원한다. 미국 재활법 508조 공공우선 구매 제도에는 정부 기관에서 장애를 지닌 근무자나 장애인이 정보나 서비스 이용을 일반인과 동등하게 할 수 있도록 접근성 기능을 지원하는 제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럽의 경우 현재 관련 법률은 없지만, 접근성 법을 제안해 유럽의회에서 심의 중이다. 또 무인단말기에 대한 표준을 개발 완료했으며 검증방법을 연구 중이다.

 

 

모두를 위한 접근성

장애인 정책 추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장애인을 향한 시혜적 시선이다. 장애인을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이 과도한 부담과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무인단말기 접근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접근성 디자인의 혜택은 장애인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 대한 접근성 기준을 마련해둘 경우 장애인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시력이 낮은 사람도 더욱 편리하게 기기를 이용할 수 있다. 기기에 표시되는 정보의 시인성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이용석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장애인을 위해 뭔가 해주는 것처럼 생각하면 끊임없이 국가와 사회의 짐이 될 거다”라며 “누구나 늙고 다치며 모두의 편리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석일 충북대 명예교수 (사진=김병훈 인턴 기자)

 

 

곽은교 보건복지부 행정사무관은 국회에서 발의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정부에서 무인단말기 접근성 문제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석일 충북대 명예교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의 무인단말 제조사는 대부분이 영세업체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단기간 내에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게 불가능하며 이런 부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출처: http://www.bloter.net/archives/308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