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기기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시작은 애플이 내놓을 것이라는 미지의 시계였다. 정작 그 기기는 세상에 등장은 커녕 존재 자체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그 상상력은 꽤 많은 결과물로 등장했고 아직도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과정에 있다.
여러 제품을 쓰면서 이 시장과 제품에 대한 판단도 수십번씩 바뀐다. 아직도 발전하고, 더 고민해야 하는 분야라는 얘기다. 최근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앱을 실행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스탠드얼론에 대한 이야기다. 기기 자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냐를 말하는 것이다.
#1. 앱을 어디에 깔까?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의 ‘기어2′ 같은 제품이다. 삼성이 하려는 것은 시계 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계 전용 운영체제를 만들고 그 자체로 앱을 돌린다. 현재는 시계 자체가 통신까지 갖추기에는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블루투스를 이용하지만 결국 삼성이 바랐던 것은 직접 앱을 돌리는 것이었다.
삼성은 결국 안드로이드 대신 타이젠을 운영체제로 올렸고, 시계를 타이젠 플랫폼의 교두보로 삼았다. 국내외의 여러 파트너 업체들이 기어용 앱을 만들었고, 블루투스로 스마트폰에 연결만 되어 있으면 각 앱들이 살아 움직이고, 스마트폰을 제어하기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여기에 USIM을 넣으면 스마트폰이 없어도 되는 독자적인 기기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 다음이 웨어러블 기기라고 내다보는 전략이다.
그런데 정작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의 접근은 전혀 반대 방향에서 왔다. 구글은 기기 자체에는 앱을 설치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대신 각 앱들이 시계를 보조 스크린으로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알람 메시지를 시계로 보내주는 역할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드로이드웨어를 써보기 전에는 스탠드얼론 방식이 훨씬 나았다. 시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떻게 보면 멍텅구리같은 기기였다. 하지만 구글 나우를 비롯해 몇몇 앱들이 상당히 똑똑하게 알림 메시지를 손목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간단한 e메일을 열어보고 관리할 수 있고, 페이스북의 알람을 확인하고, 행아웃 메시지에 음성으로 답을 보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시계가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하다.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보내고 스마트폰의 구글나우가 각 명령들을 처리한다. 양쪽을 오가는 프로토콜은 매우 단순하다. 앱을 별도로 만드는 것보다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면서 스마트폰에 알림을 띄우는 것처럼 비교적 간단하게 시계로 보낼 수도 있다. 구글이 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은 메시지가 걸러지지 않고 시계로 전달돼 피로감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 정도면 된다.
현재 안드로이드웨어는 기대 이상으로 배터리 소비가 심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길게 보면 시계 자체에서 소비해야 할 프로세스를 줄일 수 있다. 대기 상태에서 메시지를 받고, 푸시 메일을 당겨오는 등의 역할은 시계보다도 스마트폰에서 하는 편이 전력면에서는 효율적으로 짤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나와 있는 안드로이드웨어 기기들이 왜 이렇게 배터리 이용시간이 짧은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운영체제단에서 정보를 가공하고 타 기기로 전송하는 것은 역시 운영체제와 플랫폼을 갖고 있는 구글이나 애플같은 사업자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쪽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구글이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앱 실행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용 패턴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현재 안드로이드웨어로 구글이 원하는 이용 행태는 시계로 메시지를 받고 결국 끝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열어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다. 반면 삼성을 비롯해 자체적으로 기기를 운영하려는 업계는 안드로이드폰의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양쪽을 다 가져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어쨌든 기기 스스로가 앱을 직접 품고 실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는 웨어러블 기기에서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2. 헬스케어가 전부?
반면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 가장 걱정되는 점은 헬스케어다. 건강관리와 생체정보는 현재 상황에서 가장 솔깃한 콘텐츠다. 나이키의 퓨얼밴드를 비롯해 삼성전자의 기어핏, 핏빗, 미스핏 샤인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기들이 헬스케어를 노리고 나온다. 현재 나오는 웨어러블 기기의 거의 대부분에 들어가는 기본 기능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많은 헬스케어 장비들이 결국 어느 정도 쓰다가 시들해지곤 한다. 이유는 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 그리고 그 가치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수치나 점수, 또 게임 요소가 어느 정도 걷고 싶은 심리를 자극하긴 하지만 그날 얼마나 걸었는지는 굳이 숫자로 적지 않아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물론 이 시장이 성장하는 데에 있어 센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결국 건강 정보를 수시로 수집해 아프기 전에 진단을 내리는 건강관리 솔루션을 만들길 원한다. 애플이 ‘헬스’로 하려는 것도 결국 그런 것일 게다. 그렇다면 현재 제품에 넣을 센서들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하고, 이를 어떻게 의료 전문가에게 전달하고 분석할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법제도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려하는 부분은 사람들이 결국 ‘웨어러블=걷기 센서’로 경험을 고착화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대와 관심만큼 적지 않은 이들이 비싼 값에 웨어러블 기기를 사지만 결국 실망으로 끝나고 무용론을 하나둘씩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번 돌아선 이들을 다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시장을 빨리 받아들이는 얼리어답터들이다. 동작 센서에 기반한 피트니스 체크는 이제 기본이다.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기다.
#3. 디자인, 어디로 가야 해?
그런 면에서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의 모양은 시계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특수 목적이 아니라 일반적인 환경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웨어러블 기기의 역할은 센서 정보를 취합하는 것보다 원하는 정보를 보여주는 쪽이다. 그런 역할로 가장 어울리는 모양은 역시 시계다. 시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계 모양이라는 얘기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자면 초기에는 센서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전달해주는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디스플레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간단한 구조의 피트니스 밴드가 좋았다. 그런데 뭔가 정보를 보려면 스마트폰과 연결을 해야 했다. 귀찮았다. 며칠씩 동기화를 안 하곤 했다.
그러다가 작은 디스플레이가 달린 피트니스 밴드로 바꿨다. 내 매일의 기록을 보관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그냥 지금 얼마나 움직였나를 보는 것 하나로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한쪽 팔에는 내가 원하는 시계를 찰 수 있었다. 시계 모양의 기기를 꺼렸던 이유는 너무나도 ‘웨어러블 기기같은 디자인’ 때문이었다.
지금도 내가 원하는 형태의 기기는 기존의 시계 회사들이 구글이나 애플의 플랫폼에 맞는 시계와 센서 정보를 갖추는 것이다. 굳이 이게 웨어러블 기기라고 인식하고, 주변에서 의식할 필요도 없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또 원하는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시계로 너무 많은 정보를 보여줘야 할 이유도 없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데 1~2초면 된다. 지금 보고 싶어하는 정보와 스마트폰으로 봐야 하는 정보가 분리되면 된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애플이 최근 태그호이어의 임원을 영입했다는 것은 이미 이런 고민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주도권을 누가 가져갈 것이냐에 대한 눈치 보기는 자동차 시장과 비슷하게 보수적인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최근에 들은 이야기 하나가 솔깃하다. 현재 웨어러블 기기가 아주 흉측한 디자인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기존 시계 대신 차고 다닐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시계도 그날 입은 옷이나 참석할 자리, 또 용도에 따라 캐주얼, 정장, 스포츠 시계 등으로 나뉘고 그나마도 마니아들은 이것저것 바꾸어 찬다. 웨어러블 기기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그 기기들이 좀 더 예뻤으면 좋겠다는 요구는 꾸준히 뒤따르게 마련이다. 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 고민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나 뿐 아니라 업계, 그리고 이용자들이 함께 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우리가 손목에 뭘 하나씩 차기 시작한 게 불과 1년만에 나온 것들이다. 그리고 이제 가속화된다. 좀 더 많은 상상력을 기대하도 좋다. 다만 어떤 한 회사가 답을 내놓길 바라는 분위기만 경계하면 될 것 같다.
http://www.bloter.net/archives/199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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