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4일 나인투파이브맥 등 애플 소식을 주로 전하는 해외 매체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나왔다.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에서 글로벌영업∙판매부서 부사장을 맡았던 파트리크 프루니오가 애플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이었다. 태그호이어는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다. 고가 시계 브랜드의 임원이 애플에서 새 사무실을 꾸렸다는 소식에서 많은 이들은 애플의 ‘웨어러블’ 전략을 떠올리기도 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패션업계 인물이 애플로 이동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굵직한 패션업체에 몸을 담았던 인물이 애플로 이동한 사례가 적잖다. 직장인의 단순한 ‘이직’ 활동 정도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인물들이라는 점과 지극히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애플은 패션업계에서 무엇을 배우려 하는 것일까. 아직 실제 존재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애플의 손목시계 소문이 엉뚱하게도 패션업계 소식과 맞물려 부풀어오르고 있다.
IT 업계에 떨어진 ‘태그호이어’ 부사장의 역할
애플은 공식적으로는 파트리크 프루니오 전 태그호이어 부사장의 영입에 관해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어디 이번 한 번뿐이랴. 애플은 공식 답변을 받기 어려운 업체 중 하나다. 종종 합리적인 추측과 주변에 관한 분석이 애플을 해석하는 밑바탕이 되는 까닭이다.
우선 합리적인 추측을 해보자. 애플이 손목시계 모양의 스마트시계를 개발 중이라는 소문은 지난 2012년부터 나왔다. 해가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몇 번이나 출시 시기를 점치는 얘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두 뜬소문으로 판명됐다. 현재는 애플이 오는 가을께 스마트시계의 실체를 공개할 것이라는 추측만 남아 있는 상태다.
태그호이어의 전 부사장이 애플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의 제품이 태그호이어라는 거울에 어렴풋이 비친 것과 같다. 애플이 시계 브랜드의 판매 담당 부사장을 영입한 까닭은 애플이 개발 중인 차세대 제품이 바로 시계와 관련이 깊은 제품이라는 분석이다.
애플은 파트리크 푸르니오가 애플에서 무슨 역할을 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스마트시계 디자인을 담당하게 될까. 적어도 디자인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가 지금까지 맡아온 일은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
파트리크 프루니오의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자. 그는 1997년에서 2000년까지 영국의 증류주 제조업체 디아지오에서 시장개발 매니저로 일했다. 이후 모엣헤네시 그룹에서 미국과 남미 지사장을 거쳐(2000~2004년) 태그호이어 부문 수출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2005~2009년). 파트리크 프루니오가 모엣헤네시 그룹에서 태그호이어의 글로벌 판매 부문 부사장으로 일한 것은 2010년부터다. 주류업체의 시장 매니저로 시작해 모엣헤네시 그룹에서 유통과 마케팅을 아우르던 인물인 셈이다. 애플에서 그의 역할도 새 제품의 글로벌 판매 전략을 짜는 것에 집중될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파트리크 프루니오의 경력에 애플이 인상적인 발자국을 남기도록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파트리크 프루니오 전 태그호이어 글로벌 판매 부문 부사장. 최근 애플로 자리를 옮겼다.
이브생로랑·버버리…패션업계 CEO 줄줄이 애플로
주변도 상황도 살펴보자. 태그호이어는 ‘루이뷔통’ 브랜드로 유명한 ‘모엣헤네시 루이뷔통(LVMH)’이 소유한 브랜드다. 광고 모델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가 등장했다. 덕분에 국내에서도 눈에 익은 시계 브랜드다. ‘크로노그래프’로 대표되는 태그호이어 시계의 기계적인 우수성이나 자동차 경기와 파트너십을 맺어 얻게 된 남성성과 정밀성은 태그호이어의 상징과 같다.
애플이 만약 실제로 스마트시계를 개발 중이라면, 태그호이어의 성격이 제품에 묻어나게 될는지도 관심사다. 하지만 태그호이어의 브랜드 이미지가 애플의 새 제품에 묻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앞에서도 설명한 것과 같이 파트리크 프루니오는 판매와 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경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기술이나 디자인 등 제품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애플의 비슷한 인사 영입은 지난 2013년에도 있었다. 고가의 의류 브랜드 ‘이브생로랑’에서 CEO를 역임했던 폴 데네브가 애플의 특별 프로젝트 부문 임원으로 옮겨왔다. 이브생로랑은 프랑스의 의류 그룹 케링이 보유한 브랜드다. ‘알렉산더 맥퀸’이나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이 케링이 보유한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이브생로랑도 이른바 명품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폴 데네브의 경력 중 파트리크 프루니오와 차별화되는 점은 그가 이미 1990년대 초반 7년여 세월 동안 애플 유럽의 판매·마케팅 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폴 데네브가 쌓아 온 패션업체 경력은 20여년이 흐른 뒤 다시 애플로 돌아오도록 했다. 애플의 전략이 지난 20여년 동안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폴 데네브의 경력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이브생로랑보다 ‘버버리’ 브랜드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안젤라 아렌츠 버버리 전 CEO도 지난 2013년 가을 애플의 임원이 됐다. 안젤라 아렌츠는 애플에서 제품 유통과 소매점 운영에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 폴 데네브 애플 부사장. 패션 브랜드 ‘이브생로랑’에서 CEO를 역임했던 인물.
△ 안젤라 아렌츠 애플 수석부사장. 패션 브랜드 ‘버버리’ CEO를 역임한 바 있다.
삼성∙구글엔 없고 애플엔 있는 것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애플은 지금 삼성전자나 구글, 소니 등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제품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다. 생각해보자.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시계를 개발한 삼성전자는 ‘기어’ 시리즈를 전자제품으로 포장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변형 쯤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기어 시리즈에 탑재된 기술이 강조됐고, 광고 화면에서는 스마트폰과의 연동 기능이 중심에 섰다. 소니의 ‘스마트와치’ 시리즈나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기어, 소니의 스마트와치,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는 손목에 차는 스마트폰 보조도구일 뿐 전통적인 의미의 시계는 아니었다.
파트리크 프루니오는 애플의 새 제품을 어떻게 포장할까. 삼성전자, 소니, 구글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 있다. 최소한 기술력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시계 브랜드는 결코 기술의 우수성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역사와 가치에 집중한다.
수천만원짜리 시계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계를 구입하는 이들도 기술력의 우수성을 때문에 돈을 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계는 사용자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하고 가치를 좌우하기도 한다는데, 수천만원은 그 가치에 대한 비용이다. 태그호이어 출신 임원도 이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는 애플이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도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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