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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시계와 웨어러블 사이…하이브리드가 뜬다





3월 9일 애플은 미디어 행사를 통해 신제품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제품은 단연 ‘애플워치’였다. 하지만 발표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오히려 신형 맥북에 쏠렸다. 결론적으로 애플워치는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애플 발표에서 기대하는 ‘One more thing’은 없었다. 일부에서는 이번 발표가 잡스 사후 팀 쿡에게 최대의 위기가 될 것이라는 표현도 하고 있다. 

사실 이번 행사는 작년에 발표한 애플워치 내용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번 발표를 통해 애플워치가 새로운 혁신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 듯하다. 어쩌면 그동안 잡스의 쇼맨십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이번 애플워치 발표가 언론의 혹평을 들을 만큼 부족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팀 쿡은 새로운 스마트 디바이스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계를 소개하고자 노력했다. 발표 내내 시간의 정확성을 강조한 것과 같이 스마트한 기능보다는 시계라는 본질에 충실하고자 노력한 듯하다. 

물론 피트니스 기능과 애플페이 기능 등도 포함돼 있지만, 스마트워치 분야에서 새로운 기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헬스키트를 고도화시킨 ‘메디컬 리서치’ 프로젝트에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애플워치가 잡스 사후 애플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제품 출시 이후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지 어느 쪽으로든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애플의 경쟁력, 디자인 테크놀로지
아이폰 이후 많은 소비자는 끊임없이 애플에 기술적인 혁신을 기대한다. 다행히도 아이패드가 전문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태블릿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 향후 노트북 시장까지도 태블릿의 확장인 패블릿이 침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애플 제품의 특징은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미려한 디자인으로 대표된다. 단순히 예쁘다는 느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제품을 사용할 때 의외의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시해 시장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단순히 외형과 기능만을 가지고 제품을 평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아직 애플워치를 사용해 본 사람은 없다. 발표를 통해 얻은 사실은 기능에 대한 정보가 전부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디지털 크라운이나 새로운 터치 기술 등이 적용된 애플워치의 디자인 테크놀로지 능력은 기존 스마트워치와는 차별화됐다는 사실이다. 동영상과 사진만으로 애플워치를 볼 때와 실제로 착용했을 때의 느낌은 다를 것이다.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화면이 커진 아이폰이라고 조롱했지만, 실제 소비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애플워치 배터리 이슈가 제기되고 있지만, 아이폰 초기 버전도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600만 대나 판매됐다. 과거 피처폰 시절 충전 패턴과 스마트폰 시대의 충전 패턴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본다면, 배터리 충전 문제는 사용자 습관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피처폰 시절이라면 배터리가 24시간도 못 버티는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애플워치의 가장 큰 약점은 가격이다. 구매심리를 자극하기에는 너무 높은 가격임에 틀림없다. 너무 다양한 제품 라인업도 문제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애플워치는 42㎜, 38㎜ 두 종류의 다이얼과 여러 종류의 스트랩을 조합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예측하건대 사람들은 가장 저렴한 애플워치 모델을 구입한 후에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에서 다양한 종류의 스트랩을 구매해 교체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애플워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충분히 팔릴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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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시계 브랜드와의 디자인 경쟁
지난해 9월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은 “애플워치가 스위스 시계 산업을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들과 경쟁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는 또 애플워치의 경쟁력을 자신들의 기술력과 패션이 결합된 ‘디자인 테크놀로지’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애플워치 에디션’ 모델은 약 1만 달러대 가격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애플은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삼성, LG, 소니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애플워치가 명품 시계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다. 

애플워치 에디션 모델을 구매할 가격이면 스위스 명품 시계 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매우 넓어진다. 디자인만 놓고 볼 때 아직 애플워치는 그들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애플워치 에디션 모델이 18K 골드를 사용한 것 외에 기능으로서의 가치는 저가형 애플워치와 다르지 않다. 시계 디자인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오히려 디지털 요소들이다. 배터리에 기반을 둔 전자식 모델은 기계식 시계의 톱니바퀴라는 고전적인 복잡함 속의 미학을 추구할 수 없다. 

1000만 원대 이상 명품시계 중에서 배터리를 이용하는 시계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이것이 시계라는 제품이 가지는 독특한 디자인 요소다. 단순히 보석이나 금 도금으로 가격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명품 시계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전히 스위스 명품 시계들은 기계식 무브먼트(시계가 동작하도록 하는 내부 기계장치) 속에서 미학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 전통은 수백 년을 이어오고 있다.

스위스 명품 시계들과 경쟁을 하겠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디자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계식 명품 시계를 선택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브랜드, 디자인, 무브먼트(동력장치)다. 많은 명품 시계들이 의외로 무브먼트를 직접 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명한 무브먼트를 채택하고, 자신들의 시계에 어떤 무브먼트가 적용됐는지를 적극 홍보한다. 자동차를 만든다고 모두 엔진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디자인에 강점이 있다면 오히려 디자인에 집중하고 누구나 알만한 좋은 엔진을 탑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전략이다. 무브먼트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은 스마트워치에게 약점으로 작용한다. 스마트워치를 웨어러블 디바이스 관점으로 볼 것인지, 기존 시계 산업의 확장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시장의 규모는 달라진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 시장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면 기존 시계 산업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애플워치가 기존 시계 산업과 비교해 가질 수 있는 경쟁우위는 애플의 개발자 생태계다. 애플워치 생태계는 단순히 시계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포함한 사물인터넷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스마트워치는 기존 시계 산업이 아니라 웨어러블 산업으로 분류돼야 할 것이다. 먼 훗날 웨어러블이 시계 산업을 붕괴시킬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미약하다.

디지털 혁신에 의해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산업의 붕괴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고전적인 기계장치인 자동차 시장까지도) 시계라는 카테고리는 디지털 혁신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여전히 시계 산업은 기능보다 패션으로서의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전체 시계 산업을 놓고 볼 때 스마트워치는 기능을 선호하는 사용자들에게 대체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그 대상의 영역이 20%를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기능적인 이유로 스마트워치를 선택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패션의 가치를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분명 애플워치는 기존 스마트 워치에 비해 디자인적인 차별화를 가져왔고, 사용자 경험(UX) 관점에서 사용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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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에서 내놓은 스마트워치 게스 커넥트

하이브리드 스마트워치 주목
현재 시계 디자인의 90%를 좌우하는 기계식 무브먼트 방식의 감성을 액정 디스플레이로 대체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방식이 기계식 무브먼트와 스마트워치 기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하이브리드 방식이 한동안 높은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가 대부분 이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태그호이어, 몽블랑, 브라이틀링, 티쏘 같은 브랜드들이 이미 수개월 전부터 
스마트워치를 준비하고 있다. 

시계 산업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는 1970년대 등장한 ‘쿼츠(Quartz)’ 방식 시계 돌풍이었다. 세이코에서 개발한 쿼츠 방식의 전자시계는 싸고 정확한 시간을 제공하며 기계식 스위스 시계 기업들을 몰락시켰다. 이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스위스 시계 기업들은 스마트워치 시장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 그들은 노키아로 대변되던 휴대폰 시장을 PC나 만들던 애플이 몰락시킨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며, 애플워치를 포함한 스마트워치 제조사들이 시계 시장에서 상대해야 될 대상은 기존 스위스 시계 기업들이 될 것이다.

하이브리드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카이로스’라는 스타트업이 개발한 제품은 기계식 시계 구조를 기본으로 하되 다이얼 글라스에 반투명 액정을 활용해 스마트워치 기능을 구현했다. 프랑스 의료기기업체 위딩스는 피트니스용 밴드를 결합한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제품은 디지털 액정이 없지만 자체 센서를 기반으로 웰니스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능을 제공한다. 패션 브랜드인 게스는 다이얼 일부에 소형 액정 화면을 설치해 스마트워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패션 브랜드가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스마트 기능을 포함한 하이브리드 방식의 스마트워치를 계속 출시할 것이다. 태양광 충전 방식을 선택해 배터리 문제를 해결한 ‘니보(Nevo)’라는 스마트워치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제품들의 스마트 기능은 기존 스마트워치보다 부족하겠지만, 목적에 맞는 기능만을 제공하되 패션으로서의 가치를 높였다는 장점이 있다.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중 하나인 태그호이어와 몽블랑에서도 조만간 스마트워치를 선보일 계획이라도 하니 올해 스마트워치 시장은 애플워치의 출사표로 춘추전국시대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스마트워치 시장은 비포 마켓(Before market)이었다. 

올해가 스마트워치 1.0의 시대가 될 것이다. 여전히 스마트워치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디자인 부분에서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이폰의 경우도 3GS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대중화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내년쯤 애플워치2가 출시될 시점이 되면, 스마트워치가 대중적인 제품으로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지 아니면 단순한 기술적 트렌드로 끝날지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애플워치를 포함한 스마트워치는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진행 중인 제품일 뿐이며, 스마트폰 시장과는 달리 기능과 디자인 융합에 성공한 제품만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