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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Insight/IT News

비싸도 '갖고 싶은 냄비'… 애플· 루이뷔통을 연구한다

휘슬러(Fissler)는 압력솥, 냄비, 프라이팬, 나이프, 조리 도구 등을 파는 주방용품 브랜드다. 전 세계 72개국에 약 500여종이 넘는 주방용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1845년 발명가 출신 카를 필리프 휘슬러(Carl Philipp Fissler)가 창립한 이 회사는 독일의 작은 마을인 이다-오버슈타인(Idar-Oberstein)에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열차로 3시간이나 들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170년 동안 본사와 공장을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모든 것을 독일에서만 만드는 독일제(Made in Germany) 전략을 구사하는 이 회사는 굳건한 '장인'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그런데 이 회사의 마케팅은 더 독특하다. 명품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예술로 주방용품을 표현하는 '아트 마케팅'을 도입했다. 마커스 케프카(Kepka·53) 사장이 한국을 찾은 것도 여러 예술인과 협업,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예술로 표현한 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런 것을 이른바 '비자트(bizart)'라고 하는데, '비즈니스'와 '아트'를 합성한 말이다. 과연 밥솥이나 냄비 같은 분야에 이런 마케팅이 의미가 있을까. 검은 뿔테 안경에 휘슬러의 상징인 솔라 무늬가 새겨진 넥타이를 맨 케프카 사장은 패션 브랜드의 경영진을 연상케 했다.

―비자트 또는 아트 마케팅을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주방용품 자체는 지루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냄비가 재밌는 물건은 아니지요(웃음). 우리가 하는 일은 '항상 소비자를 즐겁게, 행복하게 해주자'입니다. 단순히 제품의 질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주부들이 매일같이 접하는 주방용품에 애착을 갖게 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이 제품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지요. 우리는 꾸준히 예술을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소비자와 브랜드의 친밀도, 애정은 생각보다 강력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하지만 주방용품에 예술이라니, 너무 부담이 되는 마케팅이라고 보시진 않나요?

"투자입니다. 전시회를 열면 상당한 돈이 들지만, 여기서 얻는 홍보 효과는 텔레비전에 광고를 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만 일한다면, 절대 차별화된 결과를 얻을 수 없지요. 아트 마케팅은 고비용 전략입니다. 하지만 휘슬러를 알리고, 제품을 판매하는 데 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우리는 '사고 싶은 제품'이 아니라 '원하는 대상'(a product wanted than bought)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한발 더 나간 프리미엄 전략이라고 봐도 될까요?

"제품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여러 브랜드의 냄비가 얼마나 다를까요? 물론 우리 회사는 제품의 질도 가장 좋다고 자부합니다(웃음). 하지만 냄비는 냄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소비자가 우리의 냄비를 사는 이유는 단순히 제품의 질 때문만은 아닙니다. 휘슬러를 갖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브랜딩이 제품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군요. 굳이 따지자면 제품의 질이 먼저겠지요. 하지만 브랜딩 없이 소비자에게 기억되고 오랜 세월 사랑받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브랜딩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며, 그리고 그 약속은 제품의 퀄리티(질)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휘슬러(Fissler)는 압력솥, 냄비, 프라이팬, 나이프, 조리 도구 등을 파는 주방용품 브랜드다.

예컨대 지금 전시회에 왔다면, 사람들은 감동을 해서 '이렇게 예술을 중시하는 회사는 어디지?'라며 휘슬러에 대해 궁금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품을 사보겠지요. 그리고 나서 제품의 질을 통해 휘슬러에 가졌던 기대와 애정에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전시회에 왔고 휘슬러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후 제품을 접해보고 실망하게 된다면, 배신감은 더 클 것입니다. 다시는 그 브랜드의 제품을 사지 않겠지요. 170년 동안 휘슬러의 브랜드가 지속될 수 있던 비결은, '품질이 첫째'라는 원칙 덕분입니다. 우리는 혁신에 기반을 둔 제품을 만듭니다. 제품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다음에 브랜딩에 힘쓰는 것이 맞습니다."

―다른 업종의 기업 전략을 참고하시기도 하나요?

"애플을 꼽겠습니다. 애플은 브랜드 가치가 매우 높고 제품의 질도 우수합니다. 사실 제품만 따지자면 삼성이 더 좋지요. 연구·개발(R&D) 부서의 직원들은 늘 저에게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제품만큼 브랜드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삼성이 더 나은 제품을 가지고 있지만, 애플이 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이 팔리는 것만 봐도 브랜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에 저는 구치와 루이뷔통 등 력셔리 브랜드의 전략을 공부합니다. 가격이 비싸도 소비자들은 명품을 원합니다. 가방의 기능적인 면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요. 물건만 넣으면 됐지. 하지만 수백, 수천 배의 가격 차이에도 소비자들은 명품 가방을 원합니다."

―주방용품 시장만의 특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 고객층인 여성의 감성을 이해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 역시도 쇼핑하거나 요리를 할 때, 문화 예술에 대한 감각을 키울 때에도 '여성이라면 어떤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느낄까'라는 문제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아시아 여성이 가사에 임하는 자세, 육아, 취미생활에 대한 부분, 나아가서 패션과 뷰티에 대한 취향마저도 제품개발 때 실제로 반영이 되는 요소들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들은 유럽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주방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 이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최근 맞벌이 부부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주방에서의 일은 말 그대로 고된 일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주방 일에 임할 수 있도록 뛰어난 기능과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을 갖춘 제품들을 개발해 출시하는 것은 우리로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멋진 한두 개의 명품을 갖는 것 역시 단순한 과시적 소비를 넘어 자신에 대한 즐거운 투자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 주방 공간도 아름답게 장식하고픈 로망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루이뷔통의 모노그램처럼, 휘슬러의 솔라 문양이 그들에게 갖고 싶은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 역시 그들의 취향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