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에는 1등만이 살아남는다...
먼저 선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을 위해 합병...
이러한 것이 디지털 마케팅의 핵심 개념입니다.
김범수 사장은 디지털 시대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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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의 공동 수장에서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이. 1등 다음을 누르고 NHN을 1위 포털 반열에 올려놨고 이제는 자신의 고향 네이버 누르기 위해 다음을 진두지휘하게 될 당사자. 1966년생 삼성SDS 출신의 김범수 이야기다.
김범수 의장을 관통하는 4대 키워드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 발표된 5월26일 오후 2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자들은 김 의장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지만 합병 법인의 두 대표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음카카오의 실질적 결정권을 김 의장이 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다음카카오의 개인 지분 22%와 K큐브벤처스의 지분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그가 합병 법인의 최고 실력자가 될 것이라는 진단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그는 업계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축에 속한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 김범수 의장은 한 가지 애착, 한 가지 습관, 한 가지 사업철학, 한 가지 거부감을 지닌 인물로 요약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인터넷의 사업 영역을 좋아하고, 40분간 샤워를 하며 끊임없이 무의식과 대화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고, 인터넷 시대엔 1등 외엔 의미가 없다는 사업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경직된 거대 조직을 거부한다. 김범수 의장을 관통하는 4가지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김 의장은 인터넷을 ‘연결된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 핵심에 커뮤니케이션이 자리잡고 있다. 그를 게임의 상징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많지만,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설계자’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 연결된 세상에서 무엇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가가 늘 그의 관심사였다. 그 첫 번째가 게임이었을 뿐이다.
이미 알려지긴 했지만, 김범수 의장에겐 아침마다 40분간 샤워를 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다.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무의식과 집중적으로 대화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 속에서 문제를 푸는 다른 경로를 찾고 새로운 해법을 발견한다. 결정적인 위기를 넘어서야 하는 순간순간마다 그는 올바른 질문을 찾기 위해 애쓰고 적확한 해답을 찾는다. 그리고 실행에 옮긴다. 김 의장의 승부사 기질은 이런 일상의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다.(참고자료 : ‘어떻게 창업하셨습니까’)
그는 창업 초기부터 ‘인터넷 시대엔 1등만이 의미가 있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1등 자리를 지키고 탈환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모험을 감행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소멸시키면서까지 1등을 향한 질주엔 제동을 걸지 않았다. PC방 사업에서, 게임 사업에서, 네이버컴에서 그는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이 같은 그의 철학은 NHN을 경영할 때나 이번 다음과의 합병을 성사시키는 데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이다.
마지막 한 가지. 거대 조직에 대한 거부감이다. 앞길 창창하던 대기업 삼성SDS를 뛰쳐나온 것도, NHN를 그만두고 돌연 미국행을 선택한 것도 경직된 조직문화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는 NHN을 떠난 이유를 설명할 때마다 “삼성SDS를 뛰쳐나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데”라는 말로 대신한다.
김범수가 위기에 대처하는 법, ‘빅딜’
잠시 14년 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김범수 의장이 삼성SDS를 뛰쳐나와(1997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시점은 1998년 11월. 당시 다음은 ‘한메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듬해 5월에는 다음이 ‘카페’를 오픈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장악해가던 때였다. 서울대 동기이자 삼성SDS 연구소 동료이던 이해진도 주식회사 네이버컴을 설립하고 2000년대 펼쳐질 PC웹 시대의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시점이었다.
김범수는 창업 뒤 호구지책을 위해 서울 한양대 앞에서 PC방 ‘미션 넘버원’을 열었다. ‘PC방 알바’라는 관리 프로그램으로 그는 PC방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다. 막대한 PC방 프렌차이즈 네트워크도 확보했다. 인터넷 시대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으로 게임을 택한 그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한게임 정식 서비스는 창업 1년여 뒤인 1999년 12월에 시작됐다. 한게임 회원수가 300만명을 돌파해 1천만을 향하던 즈음, 그는 돌연 네이버컴과 합병을 결정했다. “인터넷보다 게임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반발하던 직원들을 “CEO를 믿어달라”고 설득하며 성사시킨 ‘빅딜’이었다.
합병이 이뤄질 당시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던 상황이었다. PC통신이 저물고 인터넷 시대가 개막을 알리던 초기이기도 했다. 한게임도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서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점이었다. 이를 감당할 만한 자금도 충분하지 못하자, 김범수 의장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시점에서는 그는 첫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네이버컴은 트래픽이 필요했고,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은 사람과 자금이 필요했다. 김 의장은 삼성SDS 입사 동기였던 이해진을 찾아갔고 ‘빅딜’을 제안했다. 당시 네이버컴은 1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한 때였지만 여전히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다음, 야후코리아, 라이코스, 네띠앙에 밀려 5인자의 자리에 있던 네이버컴에 트래픽은 절박했고, 더 나은 내일을 도약을 위해서도 한게임의 지원이 필요하던 때였다.
김범수 의장은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정리하고 네이버컴에 합병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창업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네이버컴(이후 NHN으로 사명 변경)은 한게임과의 합병으로 성장세에 탄력을 받게 된다. 요샛말로 ‘넘사벽’이었던 다음을 합병 4년 만인 2004년 서서히 앞지르게 된다. 그가 단독 CEO로 오른 지 불과 몇 달 만이다. 뿐만 아니라 검색광고와 온라인게임 유료화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키며 합병의 모범사례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날 이후 김범수의 NHN과 이재웅의 다음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인터넷 시대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게 되지만, 무게중심은 점차 NHN으로 쏠리게 된다. 특히 광고모델 전지현을 앞세운 마케팅(2004년)은 다음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이런 가운데 2004년 8월 다음은 라이코스 인수라는 악수까지 두게 된다. 2007년 대표에서 물러나 한게임에 집중하던 시기까지, 김범수의 NHN은 안정적인 1위 자리를 거머쥐는 데 성공하게 된다.
아이위랩과 모바일, 그리고 다음
김범수 의장은 2007년 NHN USA로 발령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NHN을 떠난다. 한게임 창업 동지였던 문태식, 남궁훈 등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그는 이미 퇴사를 염두에 뒀던 듯 2006년 12월 아이위랩을 설립하면서 재도전에 나설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제는 덩치가 커져버린 NHN에서 신속한 의사결정, 발빠른 시장 대응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터였다.
그는 2008년 3월 미국에 가족들과 머물며 첫 서비스를 출시한다. ‘부루’(BURU)라는 소셜북마킹 서비스다. 6월에는 ‘지식iN’의 확장판이랄 수 있는 ‘위지아’도 선보였다. 성과는 좋지 않았다. 아니 실패했다.
그 즈음 그는 미국에서 ‘아이폰’의 출시를 직접 목도했다. PC웹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확신이 갖게 됐고, 모바일을 지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2년 간의 절치부심 끝에 그는 국내로 돌아와 2010년 3월 ‘카카오톡’과 4월 ‘카카오아지트’를 내놓으며 모바일 시대 1등 자리를 본격적으로 공략했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코드는 이번에도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 무렵 다음은 서서히 성장 정체의 시기로 들어간다. 네이버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고해졌고 콘텐츠 중심의 다음 경쟁력은 각종 정치시비에 휘말리며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결국 2008년 7월, 창업자인 이재웅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같은 해 9월엔 MS의 인수설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다음도 순순히 주저앉지는 않았다.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시점부터 빠른 속도로 모바일 시장을 치고 들어갔다. 2010년 2월 ‘요즘’ 앱을 출시하고, 5월엔 카카오톡의 대항마 ‘마이피플’도 내놓았다. 7월엔 ‘다음지도’ 모바일 앱을 선보이며 모바일 맵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마이피플은 3개월 먼저 출시된 카카오톡의 위세를 꺾지 못했고, 요즘은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다음지도만이 명맥을 유지하며 다수 사용자를 확보해가고 있다. 가장 빨리 뛰어들어 1위 자리를 차지한 이에게만 기회가 허락된다는 김범수 의장의 사업철학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2011년 7월 출시된 ‘틱톡’이 카카오톡의 느린 속도를 파고들며 그 자리를 위협했지만 SK플래닛으로 인수된 뒤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다시 등장한 승부사 기질, ‘다음과의 합병’
△2014년 5월 26일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좌)와 이석우 카카오 대표.
2014년 초, 사용자 정체 상태가 지속되던 카카오에 위기론이 제기됐다. 해외 시장 개척은 지지부진하고 네이버 ‘라인’의 성장세는 아시아권을 강타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 김범수 의장은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14년 전 PC웹의 시대가 개화하던 시점이었다면 이번에는 모바일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시점이라는 게 닮았다. 본인이 설립한 회사를 버리고 합병을 선택한 형태도 흡사하다. 마치 2000년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14년 전 네이버컴에 트래픽을 선사했던 것처럼, 김범수는 이번엔 다음에 모바일을 선물했다. 14년 전 네이버컴을 통해 사람과 안정적 자금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엔 다음으로부터 사람(개발자)과 콘텐츠를 받았다. 게다가 합병법인의 실질적 지배권까지 거머쥐었다. 카카오라는 법인을 잃었지만 그는 더 큰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제 네이버컴을 1위 자리에 올려놨던 것처럼 다음카카오를 1위 자리에 올려놓는 숙제만 남았다.
이를 위해 김 의장은 자신을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를 다음카카오에 그대로 투영할 것이다. 린스타트업에서 배운 빠른 실행력과 의사결정 구조, 게임 이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개로서의 콘텐츠, 창의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직 환경 등등. 이는 그가 NHN 퇴사 후 카카오를 통해 배우고 적용해왔던 공식들이다.
‘콘텐츠는 유료여야 한다’는 그의 자존심도 다음카카오에 그대로 스며들 전망이다. 그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혀왔던 것처럼 그에게 콘텐츠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핵심 요소이다. 게임 유통 이후 카카오페이지에 공을 들였던 과거를 기억한다면 그가 왜 그토록 콘텐츠에 탐을 내는지 쉽게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또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자신의 지론으로 직원들을 설득해갈 것이고, 갈등과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평적 소통 문화를 다음카카오에 더 깊이 이식할 것이다. 빠른 실행을 가로막는 조직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끊임없는 도전을 요청할 것이다.
다음과 합병을 결심해야 했던 그날, 김범수 의장은 어김없이 습관처럼 40분 동안 샤워를 하며 깊은 질문과 씨름했을 것이다. 홀로 책을 들었고, 산책도 다녔을 게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무의식의 응답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유레카’도 외치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는 자기 내면과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냈을 거다. 그 결과가 다음과의 합병이다.
다음카카오의 미래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 충분히 그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그 해답도 명쾌하게 얻었을 것이다. 이제 남겨진 것은 그의 실행력, 단 한가지뿐이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흥미진진한 이유이기도 하다.s/19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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